오늘은 일찍 일어났는데도 수녀님들 피정 동반으로 긴장한 뒤끝이라 그런지
바로 복음 묵상이 되지 않고 나눔을 하고 싶지 않았고 한참 빈둥댔습니다.
쉬고 싶었던 것이고 그래선지 무슨 나눌 거리가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바오로 사도를 보니
바오로 사도의 회심이 과연 복되다 할 수 있는 건지 생각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바오로 사도와 같이 되라면
나는 그것을 과연 은총으로 생각할지 그것이 의문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이제부터 자기의 인생은 없는,
아주 고달픈 인생이 바오로 사도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이때 이후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오로”라고 하거나
“그리스도의 종인 나 바오로”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실제로 주님의 종으로 아주 고단한 일생을 살다가 갔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바오로를 당신의 그릇 곧 도구라고 하시고
그의 인생이 고단한 인생이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그는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주겠다.”
자기 이름은 날리지 않고 주님의 이름이나 알리는 자.
자기 인생은 없고 주님이 전부인 인생.
이런 인생인데도 바오로를 행복하게 한 것은,
예수님을 소유함의 행복이 그렇게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후에 필리피서에서 이렇게까지 얘기합니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 쓰레기로 여깁니다.”
저도 이 지고한 가치 때문에 피곤한 줄 모르고
주님의 이름을 알리는 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