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드디어 요한복음 6장의 끝부분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 대한 긴 얘기의 끝부분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리라는 말씀에 반응이 갈립니다.
사람들은 듣기 너무 거북하다며 주님을 떠나고,
베드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어딜 가냐고 합니다.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서로 딴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그대로 갈립니다.
같은 주님의 말씀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이해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 되며,
같은 주님의 말씀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거북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달콤하며,
같은 주님의 말씀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무의미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말이 되고 심지어 영원한 생명의 말이 됩니다.
이것은 어떤 차이일까요?
머리가 좋고 나쁨의 차이일까요?
심성이 좋고 나쁨의 차이일까요?
아니면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요?
머리가 좋고 나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심성이 좋고 착해도 이해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떻습니까?
분명코 믿음에서 갈리고,
그리스도교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이 그리스도교 믿음이고,
그러기에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요 생명이라고 믿고,
우리 인생 전부를 이 생명의 주님께 거는 우리지요.
이는 마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의 믿음과 같습니다.
이 길로 갈 수도 있고 저 길로 갈 수도 있는데
누구 말을 믿고 따르느냐에 따라 길이 전혀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고작 이 세상 갈림길이 아니라
영원과 생명을 가르는 정말로 고민이 되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요즘 주식 투자와 관련하여 작전꾼들의 말을 믿었다가
자기와 아는 이의 전 재산을 날리게 되는 일이 허다한데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식에서 대박과 쪽박이 갈리는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거지요.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황천길이 될 수도 천당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신앙 역사를 보니 주님을 믿게 된 후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에는 주님 말씀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언 정도로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주님 말씀이 점차 조언이 아니라
영원의 갈림길에서 듣는 구원의 말씀이 되어가고 그만큼 절실하게 받아들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되는 나이 드신 분들은
마찬가지로 어떤 길을 선택할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절실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시는데,
그래서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베드로 사도처럼 대답할 수 있는 나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