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화
협조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의 동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쪽은 원하지 않는데 한쪽만
원하고 바란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다. 서로서로 원하고 바라야지만 이루어지는 것이 협조이다. 성령
께서는 우리에게 성화되고, 우리안에서 활동하시기를 바라시지만 우리 인간의 협조 없이는 안되는 일이
다. 세상에 수 많은 세례받은 사람,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이 있지만 그리고 매일미사에 나오는 신자들도
많지만 성화된 정도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차이는 하느님의 베푸시는 은총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것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 자유의지의 차이에도 상관
이 있을 것이다.
거름을 만들때에는 나에게 뜻이 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무가 산산히 부서져주어야 한다.
이렇게 서로서로가 협조가 이루어질 때 거름은 만들어지게 된다. 내가 아무리 원하다고 해도 나무가 부
서져주지 않으면 내 뜻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나무가 아무리 부서져준다 할지라도 내가 거름을 만들고
자 하는 뜻이 없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로 거름은 만들어 질 수가 없다.그렇다면 나의 자유의지를 포기한
다는 것은 게 포기하는 것인가?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고린토1 2,12)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나의 중심과 세속중심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의 관점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나
의 중심에서 보면 모든것이 우연으로 생기는 일이고,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면 세상은 달리 보인다.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모든것이 우연이라는 것은 없고, 모든 이루어지는 일들
이 필연이다. 하느님의 섭리 없이 허락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느님은 선이
시니, 나에게 일어나는 좋은일, 나쁜일, 그 어떠한 모든 일도 , 상황도 나에게는 선물이고, 우리는 그 선
물을 알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도 바오로의 말씀으로 말을 하자면 나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관점으로 전환 될 때 우리
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것이 선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
다. 이에 질세라 예수님의 수제자이신 사도 베드로도 한 말씀 하신다.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
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 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베드로1 2,19) 지금의 상
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나보다 더 힘겨움과 고통과 시련과 아픔과 고통을 겪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 할 때에 우리는 힘을 얻게 된다. 힘들 때 나를 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바로 관점
의 전환이다. 그럴때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즉,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안고서 살아가는 것
이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고린토 1,4-14)
그리고 늘 항상 성경의 말씀안에서 수도생활을 해 오셨던 성 프란치스코도 이 진리를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분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성경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분이시니깐 말이다. 성 프란
치스코의 영적권고 깨끗한 마음에 대해서는 "지상을 것을 멸시하고 천상의 것을 찾으며 그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로 나와 세속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얼굴과 천상
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깨끗한 마음이다. 또한 그러한 깨끗한 마음가짐 속에는 주님
의 영과 그 주님의 영의 거룩한 활동을 간직할 수 있다.
이에대해서도 영적 권고에서는 주님의영을 간직하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가 다른사람
들에게서 자신을 높이는지 높이지 않는지를 보면 알수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것이시고, 다
시 가져가실수도 있는 분이시니, 그러한 하느님의 관점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서 뛰어나다고 해서 다른이들에게서 높이지를 않는다. 낮출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성
령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바로 관점의 전환이다. 나와 세상 세속주의 관점에서 방향을 틀어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거름만드는 기계를 통해서 나와 나의 뜻을 이루게 하는 부서
져주는 나무를 통해서 하느님과 성령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묵상해보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