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 규칙의 첫 마디는 다음과 같습니다.
“작은 형제들의 수도 규칙과 생활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수도회 수도자들이 이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작은 형제들만 복음을 실행하는 사람이냐?
우리도 복음을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수도자란 가난과 정결과 순종으로 대표되는
복음의 권고를 살기로 약속한 사람들이지요.
주님께서는 복음에서 많은 권고를 하셨습니다.
그 많은 복음의 권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라는 것이요,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요,
세 마디로 요약하면 가난의 사랑과 정결의 사랑과
순종의 사랑을 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수도자라면 누구나 복음적 권고를 살기로 공적으로 약속한 사람들이고,
그것을 자기 수도회의 수도 규칙에 따라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지요.
그런 것인데 프란치스코가 작은 형제들의 수도 규칙과 생활을
복음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굳이 못 박은 것은
복음보다 수도 규칙에 매일까 봐 그런 거지요.
사실 복음을 제대로 그러니까 완전하게 실행하면
수도 규칙이 따로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 프란치스코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보다 더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수도 규칙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복음보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복음을 놔두고 수도 규칙에 매일 수 있고,
복음을 단순하게 실천하면 되는데 수많은 규칙을 만들고는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그 규칙들에 얽매여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놔두고
인간의 전통에 매인다고 질타하신 것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셈입니다.
수도 규칙이 나쁜 것은 분명 아니고 분명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하느님을 가리는 우상이 되듯이
수도 규칙이 복음을 대신하는 우상이 되고 그래서 나쁜 것이 될 수는 있습니다.
복음 대신 수도 규칙에 얽매이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의 율법주의인데,
예수님께서 없애려고 하신 것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주의입니다.
무슨 주의이든 주의란 그것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듯
율법주의는 율법 지상주의 곧 율법이 최고라는 주의지요.
그런데 주님은 복음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사랑이라고 가르치셨고,
그래서 모든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복음의 권고를 사는 것이 규칙을 사는 것의 완성이라고,
권고가 법보다 가벼운 것 같아도 더 완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법으로 강제해야만 사는 우리입니까?
권고로도 충분한 사랑꾼들이 아닙니까?
오늘부터 한 주간,
저는 모 수도회 피정 지도를 합니다.
그래서 한 주간 강론은 수도자를 위한 강론임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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