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자기 행복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타인의 구원까지 챙길 수도자라면 더더욱 자기 행복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장미의 꽃을 보지 않고 가시만 보고는 불행하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소리는 듣지 않고 욕하는 소리만 듣고 불행하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빛을 보지 않고서 세상이 어둡다고 나는 불행하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나는 무조건 행복하겠다는 행복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기에 무조건 행복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조건에 의해 나의 행불행이 좌우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 의해 나의 행불행이 좌우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원수에 의해 나의 행불행이 좌우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행복한 사람에게는 원수가 없고,
원수 때문에 불행한 사람에게만 원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한때 원수 때문에 불행했었습니다.
그래서 미워했고 불행을 곱씹을 때마다
더 미워졌으며, 더 미워하니 더 불행해졌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때 깨달았습니다.
원수 때문에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원수 때문에 과거 불행한 것도 억울한데 미래까지 불행하면 안 된다는 것을.
과거 불행 때문에 원수에 매였었는데 내 인생 미래까지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 다행인 것은 이때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원수에게 향했던 시선을 하느님 사랑에 향하게 되었습니다.
원수와 미움의 지옥에서 하느님과 사랑의 천국으로 나의 시선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한 번에 바뀐 것이 아니라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었으며
행복 의지로 바꾸려고 노력한 거였고 그래서 행복 의지는 사랑 의지가 되었습니다.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빛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처럼
이웃이나 원수를 똑같이 사랑하는 완전한 사랑을 목표로 세우고,
그런 사랑의 의지를 계속 북돋웠습니다.
사랑의 의지는 강했지만,
사랑의 노력은 겸손했습니다.
‘목표는 높게, 시작은 낮게’ 입니다.
처음부터 큰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지 않고
작은 원수부터 단계적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언제나 힘들지만
계단을 단계적으로 오르면 반드시 오를 수 있습니다.
태양광처럼 하느님 사랑을 받아 오르면 지치지 않고 오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이 말씀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부터 믿기로 한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