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모두 범상치 않습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주님은 일치와 평화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주님도 일치와 평화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 주님의 본 모습입니까?
주님께서는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시고, 갈라서게 하시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잘못된 인연은 끊고,
잘못된 관계는 갈라서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관계와
하느님께 같이 가려 하지 않는 사랑은 아무리 서로 사랑하여도
잘못된 인연과 관계이기에 칼같이 끊고 갈라서라는 뜻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프란치스코가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주님을 따르려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자기 집 재산을 거덜낼 거라고
생각하였기에 프란치스코를 고소하고 상속권을 뺏으려고 했지요.
이때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자기가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선언합니다.
이제부터 자기는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자유롭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고,
오늘 주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아들이나 딸이 주님과 일치하고 주님을 따르는 데 더 문제입니다.
부부의 인연은 잘도 끊고 부모와는 갈라서도
자식과의 관계는 못 끊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제가 짓궂은 질문을 엄마들에게 던진 적이 있습니다.
죽어 부활한 뒤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과
지금 내 자식의 엄마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
지금 자기 자식의 엄마가 다시 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바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자식을 수도원에 봉헌하라고 주님께서 하신다면,
그보다 더 아예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끊으라고 하신다면,
오늘 주님께서는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그 칼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