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초대받았을 때, 경이로움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
하느님은 우리가 경이로움을 경험하도록 계속 초대하고 계시고, 단순함은 이 경이로움에 이르게 하는 문이다. 우리의 눈은 다른 곳에 집중하기에 우리는 종종 경이로움을 놓친다. 우리가 마음챙김 상태에 있거나 마음의 중심잡기 상태에 있거나 현재에 머물거나 열린 상태에 있다면(이것들은 단순성이 양성하는 것임) 세상적인 것에 마음 빼앗김 없이 우리 앞에 있는 누구 혹은 무엇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은 이것을 알았고, 그의 학생들,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랍비 사무엘 드네스너에게 이것을 나누었다.
드네스너는 헤셀의 작품 모음집인 ‘나는 경이로움을 구한다’라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표현한다.
1972년 헤셀이 죽기 몇 해 전에 헤셀은 거의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는데, 그는 이 심장마비로부터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나는 헤셀을 보기 위해 뉴욕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방문했었다. 그는 나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침대 밖으로 나왔고, 내가 도착했을 때 거실에 앉아있었고, 그는 약하고 창백해 보였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애썼지만 속삭일 정도로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말했는데, “샘, 나에게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의 첫 감정은 절망이나 화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의 생명과 내가 살았던 모든 순간들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을 느꼈어요. 나는 떠날 준비가 되었어요. ‘오 주님 나를 데려가세요.’ ‘나는 내 생애 동안 여러 기적을 만났어요.’”
그는 애씀에 지쳐 잠시 쉬고 말을 이었다. “그것은 내가 (이디시 시집의 서두에서) ‘내가 성공을 구하지 않았어요. 나는 경이로움을 구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저에게 주었어요.’라고 말한 것을 의미합니다.”
경이로움에 이르게 하는 문은 드라마처럼 우리에게 일어난다. 대부분 우리는 천국의 문이 열린 것처럼 느낀 때나 은총을 막 경험한 것처럼 느낀 때가 있다. 한 수녀의 이야기는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내가 뉴저지 체리 힐에서 머물 때, 나는 작지만 예쁜 공동묘지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였다. 매일 일하러 가기 전에 나는 공동묘지를 두르는 2km를 걸었다. 나는 걷는 동안 묵주기도를 하거나 거룩한 장소의 아름다움을 즐기곤 했다. 이 나들이에서 나는 어떤 무덤 앞에 멈추어 선 적은 없었다.
그런데 9월의 어느 날, 묘지 자리를 가로질러 있는 한 무덤의 무엇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대부분의 무덤이 있는 곳은 꽃이나 슬픔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무덤 또한 비슷하였다. 그 무덤은 특별한 것이 없었고 묘비 역시 꽤 일반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려 했는데, 무언가가 다시 나를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무덤들을 가로질러 묘비석이 있는 그 중앙으로 갔다. 묘비석에는 그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사망일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사망일이 삼일 남았음을 알아차렸다. 묘비석에는 그 사람의 사진이 들어있는 곳이 있었고, 나는 덮개를 열었다. 나는 어여쁜 젊은 여인이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을 보았으며 사진 아래 다음 글을 보았다. “학자, 운동선수, 그리고 사랑스런 딸” 비석에 플라스틱 안에 그 여인의 할머니가 쓴 편지가 있었다. 그것은 큰 사랑과 가슴 아픈 상실을 표현한 소중한 짧은 글귀였다.
나는 그날 그 비석에 이끌렸고 무슨 이유로 거기에 있게 된 것이라 느꼈다. 나는 그 젊은 여인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충분히 머물렀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일하기 위해 본당 사무실로 향했다.
그날 늦게 나의 전화기가 울렸고, 비서는 교회 사용과 관련하여 질문하는 한 여인과 통화를 할 수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본당 주임신부가 출타 중이었고, 비서는 그 여인이 지금 어떤 식의 응답이든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그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확실히 몰랐지만 나는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자녀를 상실한 부모들을 위한 국제 사별 모임의 일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임은 매달 만나는 초교파적인 모임이고, 그녀는 뉴저지 캄덴 교구 소속이라고 했다. 매년 이 모임은 지역 교회 중 하나에서 12월 기도회를 하곤 했다. 그녀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기도회를 우리 교회에서 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녀는 우리 교회 위치가 너무 좋고, 우리 교회는 친교 모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지하방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 모임에 대해 더 물었고, 그들이 서로에 대해 헌신하는 것에 감동되었다. 그녀가 그들의 목적에 대해 말할 때,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안해했고, 그녀의 딸이 죽은 기념일이 다가왔고, 지금 그 상실을 크게 느꼈다고 설명했다.
더 많은 대화 후에, 나는 주임 신부와 이야기하고 그녀에게 전화하기 위해 그녀의 이름 전체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짐작했고,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기뻐하며 그녀의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그때 무언가가 내 마음을 옥죄었다. 그 이름은 내가 공동묘지 그 비석에서 본 이름과 같은 성이었다.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그녀의 딸이 어디에 묻혔는지 물었다. 그곳은 바로 그 공동묘지이었다. 나는 딸의 이름과 사망일을 물었다. 그것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바로 그날 아침 딸의 무덤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헐떡이며 울기 시작했고 나 또한 그랬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일상 산책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그 무덤이 나의 관심을 끌었는지 설명했다.
사실 나는 안과 밖으로 떨었다. 이것은 나에게 우연의 일이 이상으로 보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무덤에 멈추었고, 나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리고나서 그날 그 어머니와 대화를 한 것이 어떻게 우연일 수 있겠는가?
그 어머니는 나에게 이것은 하느님의 사인이라고 말했다. 그 어머니는 딸의 죽음으로 무기력했었고 딸이 평화 가운데 있을지 의심했었다. 딸은 다이어트 약을 복용하다 부작용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딸은 어떤 작별 인사도, 설명도, 대답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어머니는 딸이 진실로 평화 가운데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몇 주 후에 그 어머니를 만났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슬픔 가운데에 서로를 돕는 이 사람들의 그룹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매월 모임 중 하루 내가 그 모임에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나는 그렇게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그렇게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어떤 식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와 같은 고통을 안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환영해주었고, 그들과의 교류에 내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훌륭한 사람들과 그들이 나에게 가르친 교훈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과 그들은 나에게 선물이었고, 나는 그 기억을 내 가슴에 깊이 간직하였다.
“나는 그 기억을 내 가슴에 깊이 간직하였습니다.” 라는 이 종결하는 말은 영적 삶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감동적인 무언가를 보고 경험할 능력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 랍비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이 수녀가 한 것처럼 경험을 마음에 간직하기보다는) 경험들을 트로피처럼 진열대에 두고 먼지가 쌓이게 한다. 우리가 이 수녀처럼 경험을 마음에 간직할 때, 우리는 변화될 것이고 차이는 생겨날 것이다. 그 차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아는 것이고 또한 이 함께함에 감사하기 위해 다른 이를 섬기고 싶어 한다.
어떤 경험들은 그 순간에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으나, 그 경험들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큰 힘을 될 수 있다. 2001년 나는 캄보디아의 빽빽한 일정을 마치고 방콕 중심의 야외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한 젊은 여성이 작은 부처상에 찬 물을 한 잔 올리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신심에 경탄하고 있을 때, 한 태국 남성이 잠깐 멈추어 작은 정원에서 피어있는 밝은 난초를 만지는 것을 보았다. 두 모습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나를 삶에 대한 큰 공경심으로 그리고 나의 그리스도 신앙으로 이끌었다. 삶을 무턱대고 급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나는 이 짧은 만남을 회상하며 나 자신에게 여유를 준다.
파울로 코엘로의 유명한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은 삶을 서둘러 살아가는 것과, 그럼으로 하느님이 그에게 남기시는 이정표를 놓쳐버릴 위험에 대해 주의를 받는다. 우리는 속도를 늦춤으로 경이로움으로 향하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침에 우리는 짧은 시간 침묵과 고독에 머물 수 있고, 그럼으로 하느님 앞에 감사할 수 있다. 그리고 낮시간 동안 간간이 우리가 누군인지, 우리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떠올리기 위해 멈출 수 있다. 우리가 이것을 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이정표를 놓칠 가능성은 줄어든다. 대신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을 극적인 일들이나 매일의 일상 안에서 볼 수 있는데, 즉 눈 위에 눈이 조용히 내리는 것에서나, 작은 아이의 웃음 안에서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웃는 얼굴에서 그렇다. 하느님은 우리 주위에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다. 알아차리는 영의 작용으로, 우리는 하느님이 항상 우리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냥 우리의 눈을 열고, 나아가고, 다르게 보면 된다. 물론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잘 조율된 사색하는 영을 발달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덕 공부의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이다.
첨언) 경이로움에 젖어드는 것이 우리의 영적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영적 생활을 올바르게 사는 것과 연관짓는다.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영적 여정에 필요하고, 선이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나’가 커지고 단단해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을 하기에,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접근보다는 따돌리고 배척하는 움직임을 할 수 있다. 예수님 시대 바리사이들이 그러했다. 나름 하느님을 열심히 섬겼지만, 옳음의 추구로 자비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기보다는 자기의 세계만을 공고히 하였다. 옳음을 추구하면, 삶은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고, 삶은 이분화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는 옳은 것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옳음보다는 bonus(선한, 좋은) 것에 더 집중했다. bonus적인 것은 내가 만드는 세계가 아니고, 그 시작은 누군가에 의한 것이다. 나는 시작된 무엇에 응답함으로 그 세계에 젖어든다. bonus적인 것은 경이로움이나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있고 또한 옳은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내가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내가 나의 옳은 일이나 누군가의 옳은 일을 보면서 느껴지는 좋음 등이 있다. bonus의 세계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지만, 옳은 것의 추구처럼 양분적이지는 않다. 좋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온전한 좋음에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고, 그 없는 부분에도 남아 있는 부분적 좋은이 있다. bounus를 추구하는 삶에는 분리보다는 수렴과 통합이 일어난다.
프란치스코는 bonus를 통해 하느님을 알아차렸다고 말할 수 있고, 하느님의 좋음에 젖어드는 회개의 여정을 걸었다. 그가 하느님 공부를 했던 은수처들은 대부분이 외진 곳에 있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지닌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bonus에 응답했지만 이 bonus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bonus 자체의 흐름을 따르며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갔다. 바로 그것이 ‘돌려드림’이다.
주님, 당신은 으뜸선이시고 영원한 선이시며 / 모든 선이 당신에게서 나오고 / 당신 없이는 어떤 선도 없기에 / 그들 안에 머무시며 / 그들을 복됨으로 채우시나이다. (주님의 기도 묵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