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고,
그것은 믿음이 약한 탓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이란 자신에 대한 믿음 곧 자신감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일 테고 그러니 믿음이 약했다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약했다는 것이요,
무엇보다도 악마 앞에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약했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쩌자고 악마 앞에 있는 것입니까?
사실 악마 앞에 있는 것부터가 문제이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악마 앞에 있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환난이 닥치거나 우환이 생길 수도 있고,
그때 마음이 허해지고 정신이 약해지기도 쉬운데
바이러스가 몸이 약하고 면역력이 떨어질 때 쉽게 침입하듯이
이때가 악의 세력 또는 악마의 먹잇감이 되기 제일 쉬운 때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매달려야 하는데
용한 점쟁이나 무당이 있다고 하는 등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이 있으면
거기에 혹하고 넘어가고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악마 앞에 있는 이상 악마에게 사로잡히는 것은 불가항력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쥐가 고양이 앞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옴짝달싹 못하고 하느님이 옆에 계셔도 시선을 돌리지 못합니다.
이미 악마 앞에 있기에 옆에 계신 하느님께 시선을 못 돌립니다.
그러므로 누가 이 지경이 되면 옆에서 그를 빼 내줘야 하는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고,
주님께만 그럴 힘이 있기에 마귀병자의 애비는 주님께 달려옵니다.
제자들에겐 체면 구기는 일이었지만
이때 제자들은 얼른 자기들에게 구마(驅魔) 능력이 없음을,
아니, 주님 말씀대로 믿음이 없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믿음은 가능성을 보고 가능성 있는 쪽을 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은 개방 곧 가능성에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귀병자의 애비는 제자들에게는 가능성이 없고
주님께 있음을 보고 얼른 주님께 달려와 문을 열었는데
이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의 문으로 치유의 힘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태오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같은 내용의 다른 복음 곧 마르코복음에는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두 복음을 합쳐서 볼 때
주님처럼 치유의 힘이 있어서 직접 마귀를 쫓아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자들처럼 그럴 힘이 없으면 주님께서 치유해주시길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고,
기도한다는 것 또한 주님께 그 힘이 있음을 오늘 복음의 애비처럼 믿는 것이지요.
아무튼, 우리는 믿음을 주십사고 청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