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유머가 부드럽게 만드는 자리를 환영하기
페넬로페 롤란드스가 편집한 작품 ‘Paris Was Ours’에서, 기고자들은 외국에서 온 작가들이 프랑스에 살 때 만나는 경이로움과 도전적인 경험과 활력을 주는 것과 부담스러웠던 경험들을 묘사한다. 그 기고자들 중 하나인 나타사 프레이저-카바소니는 ‘매섭게 찌르는 유머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견뎌야 했던 하나의 고통이었다.’고 말한다. 일례로, 그녀가 중년 남자에게 길을 물었다. 그가 대답하기를, “여인이여(Mademoiselle), 내가 지도처럼 보이나요?”
좋은 유머 감각을 가진 이들은 방어적이지 않고 피이드백에 열려 있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나중에 주교가 된 한 성직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을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성소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신학생이 사목 수퍼비전을 그에게 받도록 보내려 했다. 그 성직자가 나에게 말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그를 보낼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는 놀리는 식으로 대답했는데, “응, 그는 매우 고집스러운데, 당신은 더 고집스럽기에, 나는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크게 웃고 감탄하며, “그래요. 당신은 내가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나는 그것을 비밀스럽게 감추었는데.” 우리들은 함께 웃었다.
미카엘 모트는 자신의 책,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에서 잘 알려진 관상가인 작가인 머튼이 성숙해지면서 더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우리 역시 우리는 존경하는 이들에게서 이 능력을 볼 수 있다. 희망적으로, 우리 역시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고통을 겪게 되고,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약점들에 대해 웃을 수 없을 때, 이것은 대개 방어벽의 작용 때문이다. 최고 미국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이(그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 대해 빈정거리고 과소평가하기로 유명한) 최근 출판한 그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 아침 방송에 출연했다. 임기 중에 그가 어떤 실수들을 했는지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그 질문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무시했다. “만약 내가 대답을 한다면,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 정책을 키우기 위해 그 실수를 이용해서 나를 공격할 것입니다.” 정부 고위층 사람들이 잘못들을 인정하지 않을 때, 이것은 슬픈 현실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자기를 더 깊이 찾고 추구함에, 우리 자신에 대해 웃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일 뿐 아니라, 죄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목적을 고려한다면, 어떤 것이 더 나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첨언) 프란치스코는 유머와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으로 비출 수 있습니다. 당시는 고행과 단식과 같은 자기 절제가 영적 삶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권고에서 “쓸모없고 헛된 말들을 즐겨 하고, 또한 그것들로 사람들을 웃기려는 그런 수도자는 불행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프란치스코는 유머를 좋아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런데 이 권고에서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말씀과 업적 말고 다른 데서는 흐뭇함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며, 또한 그것들로써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사람들을 하느님의 사랑에 인도하는 그런 수도자는 복됩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 안의 즐거움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적인 삶 가운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먼저 프란치스코는 보여주기 위한 고행이나 설교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병이 들어 육신이 따뜻한 옷이 필요했을 때, 그는 속에 털이 밖으로 보이도록 해서 그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이 그의 몸을 생각해서 고기를 먹였을 때,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고기를 먹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세계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형제들과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중요한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느님께 찬미를 하며 프란치스코는 형제들과 함께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자연과 피조물의 아름다움에서 하느님의 선을 만나며 그 기쁨 속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에게는 중요한 기도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의 육체만이 그를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수도회가 원래 초기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이 프란치스코에게는 더 아픈 고통이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참되고 완전한 기쁨’이 그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를 수도원 문 밖으로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더 이상 수도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고, 형제들이 초기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프란치스코는 단순히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순간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보다 일치하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프란치스코는 십자가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내 주님, 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하며, 병약함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이들을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평화 안에서 이를 견디는 이들은 복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께 왕관을 받으리로소이다.”(태양 형제의 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