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한히 선행을 베풀기는
어렵습니다.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인데,
우리가 가진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면
우리도 남에게 무엇인가를 받고 싶습니다.
준 것과 받고 싶은 것이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일방적으로 어느 한 사람은 주고
어느 한 사람은 받기만 하는 구조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상을 받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누구에게서 보상을 받을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아닌 하느님께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보상을 받으려고 하다보니
돌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줍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느님의 선은
그 둘 사이에서만 오고 갑니다.
선이 움직이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반면 하느님에게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에는
누구에게나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선은 더 넓은 범위 안에서
퍼져 나갑니다.
선이 넓게 퍼져 나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그만큼 확장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께 보상을 받을 생각으로
선행을 베푸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확장에
우리도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보상 제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으로
되돌려 주시는 그분을 생각할 때
지금 당장 쥐고 있는 손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길이며
보상 제도라는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을 살아가면서도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