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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Dec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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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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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수요일
✝️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마태 15,29)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다
주님께서는 이제 산으로 가시어 병든 이들을 기다리십니다. 사람들이 다리저는 이들을 산으로 데려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분의 옷자락을 잡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그분의 발치에까지 옵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을 이중으로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다리를 저는데도 불구하고 산으로 애써 올라왔고 산에 오른 다음에는 오직 그분의 발치에 놓이기만을 바랐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엑카르트의 영성에 영향을 준 신학들
5. 아우구스티누스를 경유한 신플라톤주의:
인간의 신화, 여성, 자연, 은총, 아름다움, 창조, 창조성, 영혼과 육체의 동일본질성, 정의와 불의, 실현된 종말론, 변증법적 의식과 같이 영성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하여 엑카르트는 자기 동료 형제인 토마스 이퀴나스처럼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지 않는다. 그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자주 인용하고 - 아퀴나스도 그랬다 - 아우구스티누스를 잘 알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퀴나스가 그랬듯이, 그도 아우구스티누스를 극히 신중하게 활용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엑카르트의 시대에 서양 신학과 정치적 · 지적인 상황 속에서 최고의 권위자였고,신학자들은 그를 인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엑카르트의 일생 동안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단죄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엑카르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영성을 이원론 주위에 세우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는 원죄에 몰두한 나머지 이 세계를 멀리하고, 땅과 육체를 멀리하려 했지만, 엑카르트는 원죄에 몰두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성을 혐오했지만, 엑카르트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와의 창조 기사를 주해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만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반면에 엑카르트는 다른 식으로 말한다. 말하자면 하와가 아담의 갈빗대로 지어지게 된 것은 여자와 남자가 완전히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엑카르트의 영성신학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성신학은 전혀 다르다. 엑카르트가 힘차게 대변하는 창조 중심의 영성 전통과, 아우구스티누스가 대변하는 타락/구속 전통은 전혀 다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서양에서 타락/구속 전통을 대변한 최고의 대변자였다.(72)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2티모 1-4장 / 티토 1-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개인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먼저 하루를 정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수트리 교회회의는 교회 내에서 황제 세력의 정점인 동시에 그 전환점을 의미하였다. 서구의 이원론은 앞의 중세 제 2기에 너무나 또 일방적으로 황제의 위치에 유리하게 변하였다. 그래서 양극적인 타원형의 긴장 경계가 어지럽혀졌다. 결국 그것이 교회의 자유, 교회의 근본적인 자주성에 대한 위험한 위협이 되고 또 종교적 • 정신적 생활이 국기권력 밑에 또는 그 후견에 예속되지 말아야 하였다면, 황제와 교황 사이의 관계가 새로 규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계 역시 전반적으로 재숙고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제 곧 나타나게 될 양대 세력간의 맹렬한 격투가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순전히 수도자와 수도원의 자각에 기원을 두었던 교회 개혁 운동에서 비롯하였다. 이 개혁운동은 곧 종교적 • 윤리적 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파급되었다. 그래서 개별적인 혁신만을 지향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 정치적 • 문화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자세를 목표로 삼음으로써 밖을 향해서도 활동적이 되었다. 더구나 그것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새로 규정하고, 이 두 최고 권력에 각자에게 귀속되는 고유한 자리를 할당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은 성직 서임권 논쟁에서 교회 정책적으로 강조되었는데, 그것은 맨 처음으로 그레고리오 개혁파의 목적 설정에 의하여 교회 안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성취함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대결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도처에서 새롭고 다양한 형식을 취함으로써 정신생활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다.(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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