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림 제2주일은 오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길을 닦으라는 주일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그런데 정확히 얘기하면 주님의 길을 닦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나의 길을 닦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의 길이라면 주님이 닦아야지 우리가 어떻게 닦겠습니까?
주님도 당신이 길이라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이요
우리가 하느님께 가는 길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사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길을 우리가 닦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길은 주님께서 몸소 닦고 오시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미 오신 주님께서 나에게 오실 길만 닦으면 됩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그 길을 어떻게 닦느냐인데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데 방해되는 것들,
곧 방해물인 죄들을 치우는 것이고 회개하는 겁니다.
그것을 저는 올해 신망애 삼덕의 관점에서 봤습니다.
신망애 삼덕을 일컬어 향주삼덕(向主三德)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께 향하는 또는 주님을 향하여 가게 하는 세 가지 덕이라는 뜻이지요.
우리에게 이 향주삼덕만 있으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침없이 오실 텐데
이것이 없으니 주님께서 우리 문 앞까지 오셔서는 들어오지 못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침없이 오시도록 우리는 첫째로
믿음을 지녀야 하고 반대로 불신과 의심을 우리 안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불신이나 의심이 제게는 교만과 무관심과 즉시 연결됩니다.
교만은 주님이 오시건 말건 무관심하게 하고 무시하게 하며,
그래서 실천적 무신론 또는 불신론에 빠지게 하지요.
그러니까 주님이 오셨어도 오시건 말건, 주님이 내 옆에 계시건 말건,
내 안에까지 들어 오시지 못하여 주님께서 내 안에는 아니 계시고
그래서 주님과 상관없이 내 뜻대로 내 좋을 대로 사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도록
주님께 희망을 걸고 반대로 다른 것에는 희망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야 하는데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고
세상에 희망을 두는 사람은 주님께 희망을 두기 어렵겠지요.
그래서 세상에 희망을 두다가 실망하고 절망하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스러질 때가 새로운 희망을 둘 때임을 알아채고
롯의 아내처럼 스러질 것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것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희망을 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것이 스러질 터인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희망의 또 다른 측면이 갈망입니다.
희망이 원하는 것의 성취 차원이라면
갈망은 원하는 사랑의 성취 차원입니다.
희망이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라면
갈망은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인간적인 사랑으로 대충 대리 만족하기에
하느님 사랑이 없어도 고갈을 느끼지 못하고 갈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의 반대가 절망이라면 갈망의 반대는 욕망이며
이 욕망을 몰아내고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길을 닦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