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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2주 화요일- 하느님의 원죄

by 당쇠 posted Dec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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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오늘 비유에서 길 잃은 양은 실수로 길을 잃은 양이 아닐 겁니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이 없어서 길 잃은 양은 더더욱 아닐 겁니다.
제 좋을 대로 하려고 스스로 대열에서 이탈한 양일 것입니다.
이런 양을 주님께서는 벌을 주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시고,
오히려 애타게 찾을 것이고 찾으면 기뻐하실 거라고 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과 너무도 다르지요.
우리의 사랑은 사실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나
적어도 말썽을 부리지 않는 사람만 사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쓰레기 취급을 하니 말입니다.

이런 우리 사랑에 비해 하느님 사랑을 대단하다고 얘기하지만
그러나 어찌 보면 그러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우리 같은 인간이 그런 사랑을 하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 그러시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형제는 자기 형제의 잘못이나 죄에 대해 분노하고
그런 형제가 부끄러워 관계를 끊어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결코 남의 잘못으로 생각지 않고
모든 잘못이 자식의 탓이 아니라 당신의 탓입니다.
그렇게 태어나게 한 것도 당신이고
그렇게 키운 것도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야단치면
자식은 언제 태어나게 해달라고 했느냐,
이런 나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했느냐며 오히려 부모를 몰아세웁니다.
못된 자식이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 더 그러하십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죄와 잘못은 하느님의 원죄입니다.
실상 원죄, Original Sin은 인간의 원죄가 아니라 하느님의 원죄입니다.
인간을 이렇게 만드신 하느님의 원죄,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원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어찌하여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어
당신을 거부할 수 있게도 하시고,
당신을 떠나 자기 좋을 대로 할 수 있게 하셨을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하느님의 원죄입니다.
사랑이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싫다고 떠날 수 있게 하고
사랑이 하느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떠난 인간을 찾아 헤매게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를 주어 당신을 떠날 수 있게 하신 근본적인 뜻은
떠날 자유를 가지고 당신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느님께 가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유로이 다가가야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사랑의 본질적인 조건입니다.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고,
떠날 수 있음에도 스스로 다가가야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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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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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영희 2011.12.06 08:46:30
    하느님의 원죄는 참으로 감동을 주는데,
    나의 원죄는 왜 이리도 억울할까요?
    .
    .

    그렇군요,
    억울하다는 것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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