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바닥 영성
바오로의 회심은 바닥으로 엎어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서 있다가 바닥으로 엎어지는 것,
높은 곳에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이것이 회심의 시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고만장한 사람은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좀처럼 회개하지 않습니다.
바닥이란 실패로 치면 한두 번의 실패가 아니라 거듭된 실패요,
내려가다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닥까지 내려감은 더 이상 내려갈 것은 없고,
이제 잘만 하면 올라가는 것만 남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모두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포기한 곧 주저앉아버린 사람은 올라가지 않고,
빛 곧 희망을 본 사람만 올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두 번째 단계는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빛을 보기 전에 그리고 빛을 보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뒤집기입니다.
주저앉은 상태로 계속 있는 것도 안 되지만
엎어진 상태로 계속 있는 것도 안 됩니다.
엎어진 상태로 계속 있지 않고 뒤집어야 하늘을 보고,
바닥에서 빛을 보게 되는데 오늘 바오로 사도도 엎어지며 큰 빛을 봅니다.
아니 실은 큰 빛을 보기 전에 큰 빛에 의해 쓰러지고
그런 다음 큰 빛에 의해 일어서고 올라갈 것입니다.
여기서 큰 빛이란 하느님한테 한 대 크게 얻어맞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지금 바닥에 엎어진 것이 실은 내 실수나 인간의 딴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한테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임을 크게 깨닫는 겁니다.
갑자기 큰 빛을 보게 되면 일시적으로 눈이 부시고 멀게 되듯
큰 빛은 먼저 우리 눈을 멀게도 하지만 보게도 하는 것입니다.
작은 빛은 세상 것을 보게 하지만
큰 빛은 세상 것을 보는 눈을 멀게 한 다음 하늘을 보게 합니다.
그러니까 순서에 따라 회개의 단계를 정리하면
-엎어져 바닥까지 내려가기
-바닥에서 뒤집기
-바닥에서 희미하게 하늘을 보기
-엎어진 것도, 눈이 먼 것도 큰 빛에 의한 것임을 크게 깨닫기(바오로 경우, 눈에서 비늘이 떨어짐)
-이제 큰 빛과 새로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땅에서 살기
이런 회개의 상태를 오늘 독서는 하나니아의 입을 통해 전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