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2월 14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2)
자신의 선행을 떠들어 대다
선행을 자랑하는 말이나 행동은 모두 니팔 소리와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선행을 하고 아무도 없을 때는 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나팔과 같습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자기 자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청할 때는 선행을 하고 아무도 청하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나쁜 습관은 나팔입니다. 또 자신의 호의에 보답을 할 수 있는 상류층 사람에게 귀한 것을 주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는 고통에 묶여 있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남이 안 보는 데서 선행을 했더라도 칭찬받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려고(첫째는, 그런 일을 했다는 이유로, 둘째는 몰래 그런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했다면, 그것도 나팔입니다. 이런 경우는 몰래 그 일을 한 것 자체가 자신의 자선 행위를 나팔 부는 행동입니다. 자신을 눈에 띄게 하거나 눈에 띄려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행동은 ... 나팔입니다. 실제로 친절을 베풀었다 해도, 친절한 행동은 그 자체가 나팔을 붑니다. 그러므로 숨겨야 할 것은 그런 행동이나 장소보다는 베풀려는 뜻입니다.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3 피조물은 하느님이다
피조물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곳에서 하느님은 하느님이 되신다
이제 나는 전에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누리십니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누리시는 것과 똑같이 모든 피조물을 누리십니다. 모든 피조물을 누리시되,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서의 피조물을 누리십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누리시는 것과 똑같이 만물을 누리십니다.
자, 저를 보십시오. 모든 피조물은 저마다 최고의 완전을 향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을 잘 들어 보십시오. 내 영혼을 걸고 맹세하건대,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전에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신성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릅니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속사람과 겉사람도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고. 하느님과 신성의 거리는 수천마일이나 더 됩니다. 하느님은 생겨나기도 하시고 없어지기도 하십니다. 하느님은 가득 차기도 하시고 이울기도 하십니다.(120)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2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19-21장 /마태 1-4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2절: 그레고리오 개혁과 성직 서임권 논쟁
성직 서임권 투쟁: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불가능하였다. 그것은 교황 파스칼 2세(1099∼1118)가 하인리히 5세
(1106∼1125)와 수트리에서 맺은 정교조약(Concordatum, 1111. 2)에서, 교회의 봉건화와 함께 교회의 제국과의 내적인 관계 전체를 중지하기로 합의하였을 때 드러냈다. 독일의 제국교회는 재산과 권리에 따른 모든 소유를 왕에게 반납하고, 국왕측서는 이제 무용지물이 된 모든 성직 서엄임을 포기해야 하였다. 완전히 세속을 떠난,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된 이 해결의 시도에 대한 독일의 제후와 주교들의 한결같은 격렬한 항의는, 고대 그리스도교적 관계를 재건히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하였던가를 보여주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역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제안은 부인되었다.
타협의 가능성만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오랜 토론에서 실제적으로는 서로 떼어놓지 않은 채 성직을 외적이고 세속적인 관리의 임무, 즉 현세적 - 재물 - 인 것과 구별히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1122년의 “보름스 정교조약”에서는 2중의 서임권을 미리 고려함으로써 서임권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즉, 왕에게는 세속의 재산과 권리의 양도권을 가지는 세속적 서임이 남게 되었고 - 그것은 왕홀(王忽)의 양도를 통히여 상징되었다 - 반면 왕측에서는 영적인 서임을 단념하였다. 왕은 이것을 교회에 양도하였고 또한 주교좌 성당의 성직자와 귀족에게, 13세기부터는 전적으로 주교좌 성당의 참사회원에게 유보된 교회법상의 선거권올 존중하게 되었다. 먼저 교회 법상의 선거가 있고, 영적 서임 - 반지와 주교 지팡이에 의한 - 이 있은 후 왕은 세속적인 서임을 행하였다. 그러나 세속적인 서임이 독일에서는 주교 성성 이전에, 이탈리아와 부르고뉴에서는 주교 성성 이후에 행해졌다.(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