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화
주님의 세천사는 마므레의 참나무 곁에(창세기 18,1) 있다가
아브라함이 그것을 보고서는 마치
종이 주인을 섬기듯한 모습으로(18,2-3)
극진하게 겸손하고 겸허하게
좀 과도한 표현을 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사이도 아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말이다.
먼저 아브라함은 주님의 세천사에게
발씻을 물을 주고(창세기 18,4)
빵을 내어 준다.(18,5-6)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고(18,7)
엉긴 젖과 우유를 내 놓고(18,8)
정성을 다하여 마므레 참 나무 곁에서
세 천사에게 시중을 든다.(18,9)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 세 천사는 단순히 어떠한 사람인지
누구인지 높은사람인지 낮은사람인지
알 길이 없지만 아브라함은
그 어떤것도 상관하지 않고 극진하게 자신의 집에다 모신다.
난 아브라함의 이러한 겸손하고 겸허한 모습,
마치 종이 주인을 섬기듯한 모습이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리스도께서도 자신 스스로도 말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섬김을 받으로 온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였고,
그리하면서 종이 주인을 섬기듯이
제자들에게 발을 씻어 주셨고,(요한 13,5)
자신의 몸을 먹을 빵으로 내어 주었으며(루카 22,19),또한
마실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내주었다(루카 22,20).
그리고 자신 스스로를 빠스카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시어 제물로 내어주셨다(요한 1,29),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성찬례 예식에서 보여 주셨던
섬기는 자세와 마음이 어찌보면
구약의 아브라함이 세천사에게 해준것과도
너무나도 흡사한 것이다.
아브라함도 그리스도도
종이 주인을 섬기듯이
발씻을 물을 준비하였고,
빵을 내주었으며,
마실 음료를 내주었다. 그리고
짐승을 잡아 내주었다.
바로 아브라함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정신은
밀접하게 닮아 있는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예형인 것처럼 말이다.
곧 아브라함의 정신이
그리스도의 정신이고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브라함의 정신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셨다면
그러한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기를 원하였고,
또한 그렇게 따랐던 성 프란치스코도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닮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작음과 겸손과 겸허함이
그리스도를 닮고,
또한 아브라함을 닮게 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와 성 프란치스코는
작음이라는 한 단어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한번 묵상해 본다.
더 나아가서 그러한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 프란치스칸들도
또한 그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마므레"
라고 하는 작은 단어에는
사실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와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내가 비록 작은 빵을 하나 만든다 하더라도
그렇게 큰 대단한 빵을 만들지는 않더라도
마므레의 삶과 마음과 정신을 기억하고
되새긴다면 작더라도 큰 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