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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미움, 주머니속의 칼

by 당쇠 posted Jan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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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이 말은 맞는 말이면서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맞다는 것은 무관심이 미움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것일 때입니다.
사랑도 미움도 상대에게 관심은 있는 것이고,
그래서 많은 경우 미움은 사랑의 그림자 또는 다른 한 면이거나
불완전한 사랑일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이 관계 에너지라면 미움도 관계 에너지입니다.
즉 관계 에너지라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이에 비해 무관심은 상대에 대해 아무런 마음 씀이 없고,
관계 에너지가 아예 없으니 더 사랑의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과 관련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무관심은 누가 죽든 말든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에
누가 죽어도 상관하지 않기는 해도 죽이지는 않습니다.
곧 소극적 살인자는 되어도 적극적 살인자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에 비해 미움은 미움이 극에 달하면 적극적 살인도 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미움 둘 다 관계 에너지이지만
사랑이 생명 에너지인데 비해 미움은 반 생명 에너지이고,
사랑이 창조적 에너지인데 비해 미움은 파괴적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파괴적 에너지가 남만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요한의 편지는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라고
얘기하면서 아울러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남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죽이는 것입니다.
아니 남을 파괴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짝사랑 행복의 경험이 있습니다.
짝사랑이란 나 혼자 사랑하는 것이고
상대방은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가 사랑을 돌려주지 않지만 나는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사랑이란 그에게 가기 전에 먼저 나를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나의 사랑이 비록 그에게 전달되지 않을지라도
나의 사랑이 나를 충만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움의 그 쓰라린 경험도 있습니다.
아니 아주 많습니다.
누구를 미워하는데
미움 받는 그보다 미워하는 내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심지어 그는 내가 미워하는지도 모르고 천하태평인데
나 혼자 미워하며 괴로워합니다.
나의 미움 때문에 그가 괴로워한다면
그의 괴로움 때문에 내 미움의 괴로움이 조금이나마 위안 받고
비록 파괴적일지라도 고통을 같이 나누기라도 하는데
이 경우 상대방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고 나만 괴롭습니다.

이 역시 사랑과 마찬가지로 남을 파괴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주머니 속의 칼과 같습니다.
남을 찌르기 위해 주머니 속에 칼을 숨기고 있는데
남을 해치기 전에 자기를 수없이 해치겠지요.
남을 한 번 찌르기 위해 자기를 수없이 찌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오늘 요한서간의 말씀은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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