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라는
베드로 서간의 말을 들으면 즉시 클라라 성녀가 떠오릅니다.
클라라 성녀야말로 바로 그런 분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죽고 난 뒤 그녀는 환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계단 밑에 있고 프란치스코는 계단 위에 있는 환시를.
그래서 그녀가 쏜살같이 계단을 올라 프란치스코에게 가니
프란치스코는 그녀에게 자기 젖을 내밀며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젖을 먹으니 너무도 달콤하여 거듭해서 먹었고 먹은 다음엔
그 젖이 그녀의 입술에 계속 남아있는 그런 환시였습니다.
여기에서 계단은 천국의 계단으로서 프란치스코는 죽어 천국에 있지만
클라라는 아직 계단 밑 곧 지상에 있었으며
쏜살같이 계단을 오른 것은 프란치스코가 있는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은
클라라의 열망이랄까 갈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나타내는 것일 겁니다.
이 환시를 볼 당시 클라라는 영적인 시련이 엄청나게 클 때였습니다.
프란치스코를 통해 받았던 영적인 위안이랄까 힘이 끊긴 상태인데다,
남은 프란치스칸들은 프란치스코의 영적 유산을 놓고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었고 영적 형제들은 클라라가 대신 영적 지도자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지요.
그러니 영적인 시련과 고독만큼 영적인 위안과 힘이 그녀에게 필요했던 시기였고,
당연히 오늘 서간이 얘기하는 그 영적인 젖에 대한 갈망도 컸던 시기였지요.
사실 우리는 어려움과 시련을 겪을 바엔 영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세상 어려움과 시련을 겪더라도 그것을 영적으로 바꿔야 신앙인입니다.
예를 들어 병이 들어도 그것을 병고가 아니라 영적 시련으로 바꾸고,
갈등이 있어도 인간적 갈등에 머물지 않고 영적 갈등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병이 있으면 병만 마주하지 않고 클라라처럼 시선을 위로 돌려 하느님과 마주하고,
갈등이 있으면 그 갈등을 그 인간과의 사이에 두지 않고 하느님 앞에 놓는 겁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인자하심 안에서 그 병과 갈등을 녹여버리는 겁니다.
그래서일까 베드로 서간은 이미 맛본 하느님의 인자함을 향해 나아가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여기서 베드로 서간은 주님이 인자하신 분이라고 얘기하고
이어서 주님은 살아 있는 돌이라고 하며 우리도 살아 있는 돌이 되라고 합니다.
돌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소중한 돌과 나뒹구는 돌,
디딤돌과 걸림돌,
산 돌과 죽은 돌.
우리는 병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디딤돌 삼아 하늘로 오르고,
사람들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여기며 하느님께 오르며,
나도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병에 걸려 죽고 넘어져 죽어 죽은 자들,
곧 죽은 돌들이 널브러져 있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
영적으로 승화함으로써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이 되어
곧 살아 있는 돌들이 되어 주님의 성전을 짓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