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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날: 경탄함과 경외함

by 김상욱요셉 posted Jun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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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날: 경탄함과 경외함

당신의 삶에서 경탄함의 문으로 들어갈 때, 당신이 일상사의 빛을 경험하게 하는 단순한 방식들은 무엇인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숨을 멎게 하거나 당신을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현현일 수 있는 그런 큰 사건이 아닌, 당신에게 삶의 맛을 즐기게 하는 하느님과의 경이로운(소소한) 만남은 무엇인가?

 

첨언) 우리의 삶에는 하느님께서 일으키는 삶의 경이로움은 일어납니다. 관건은 이 경이로움에 대해 우리가 얼마만큼 열려있고 이 경이로움에 젖어드는가?’일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하고 있고 소중한 만남들은 있습니다. 이 배경에서 어떤 이는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깊이 삶의 경이로움에 젖어들고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최근 누군가가 성령의 역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옳고 그런 것을 식별하도록 한다.” 그의 말은, 저에게 예수님의 성령은 과연 어떤 작용을 하였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의 성령이, 옳고 그런 것을 식별하는 영에만 집중하게 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대했을까? 아마 잘못한 것을 다시 말하는 정도의 접근밖에 할 수 없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성령은, 옳고 그른 것을 식별하게도 하지만,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행동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성령의 작용을 옳고 그름의 식별로 여길 때, 우리의 삶의 길은 두 갈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옳은 것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 결과는 성령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았느냐?’ 이런 해석은 삶을 정돈되게 하고 삶을 단순하게 살아가도록 이끕니다. 하지만 삶의 모호성과 사람들의 다름은, 그 판단에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성령에 의해 시작되었어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그는 자신이 삶아온 환경이나 배운 것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도전을 받을 때, 우리는 마치 자기의 판단이 하느님의 것인 양 옳음을 더 강하게 주장하고 이 주장에 매이기도 합니다. 그러할 경우, 삶에는 여유가 없어지고, 일어나는 하느님의 경이로움을 내가 막거나 내가 만나지 못하는 길을 갑니다.

성령의 작용은 하느님의 생명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생명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선택의 폭은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율법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는데, 이 거룩함을 누군가 낫게 함으로써 더 깊이 살아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에게 무엇이 죄인지 구지 말을 하지 않고, 그의 처지에 함께 마음 아파하며 하느님의 생명에서 멀어진 이가 다시 그 길로 돌아서도록 이끌게 합니다. 우리는 이 여정에 참여함으로, 주도권은 계속 하느님께 내어드리며, 우리 가운데에 일어나는 것을 관조하며 젖어 들어갑니다.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영은, 어릴 때에(우리의 생존의 시기) 외부에서 들려왔던 목소리와 연관이 있어보입니다. 그 길을 따르면 사랑받을 수 있고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데에는 부족합니다.

삶의 모호성은 우리가 어른이(얼의 사람) 되도록 이끕니다. 삶의 모호함 가운데에 이 영은 과연 나와 너에게 생명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욕심없이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 영은 삶의 모호함 가운데 일어나는 삶의 경이로움에 불안함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신뢰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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