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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신비적 변화는 관계적 변화의 실체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ul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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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신비적 변화는 관계적 변화의 실체

 

그리스도의 성체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 앞에는 무릎을 꿇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체가 관계적 변화를 위한 식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물질로 된 빵의 신비적 변화에만 관심을 보입니다. 그들은 복을 받으려는 계산된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기에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만 따지지 자신의 변화나 관계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보이는 믿음의 태도는 죽음 없는 부활을 찾고 고난 없는 영광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빵은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내어주시는 몸으로 사람들을 먹이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빵에 담아 우리에게 주실 때, 사랑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내어주는 몸으로 현존하시기 위하여 죽음을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있습니다.” (1고린 12,27) 바오로 사도는 몸이라는 표상이 그리스도 신자들의 공동체를 특징 지우는 일치성, 다양성, 연대성을 말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제들은 실제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보다 빵을 변화시키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한평생 무릎을 꿇고, 신뢰하고,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성찬례에서 빵을 받아먹고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을까? 빵은 죽음과 부활로 주어진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내어주는 사랑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빵을 받아먹은 우리는 자신을 내어주는 현장으로 파견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변화가 관계의 변화로 관계의 변화가 빵의 표상이 주는 실체입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요한 6,53-56)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얼굴인 우주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지금 여기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양식입니다. 빵은 밀이 부서져 하나의 형상을 지닌 음식으로써 빵을 먹는 자들의 일치를 이룹니다. 이는 내어주는 사랑의 표상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의 관계적 선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빵의 신비는 관계적 신비가 되고 관계적 신비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는 사랑에 참여하는 기쁨을 줍니다. 이 참여 안에서 누리는 자유야말로 인간 실존의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도한 집착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과 자기 중심성은 선의 흐름을 막고 있으며, 눈앞의 이익과 즐거움과 편안함에 길들어진 우상의 실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면 숨어버립니다. 업적과 공로를 쌓기 위하여 숨어버립니다. 기도와 희생이라는 피난처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희생보다 자비를 원하시는데 여전히 대가를 치르겠다면서 보속이라는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문을 외우러 떠납니다. 자기의 몸을 내어주시는 빵을 먹고도 전혀 변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빵은 자신과 관계적 변화를 위한 식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일치성과 다양성, 그리고 연대성의 현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만물을 존재케 하는 신성한 실재와 만나는 성찬례를 통하여 완전히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된 몸으로 새로운 관계, 회복하는 관계, 나누는 관계의 현장인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인간 실존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실재와 합일이 영성체를 통하여 현시된다면 빵의 신비적 변화에 무릎을 꿇는 것과 더불어 지체인 네 앞에 무릎을 꿇지는 못하여도 꼭대기에서 내려와 동등한 위치에서 겸손하게 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치한다는 건 동등해진다는 것이며, 다양성 안에서 산다는 것은 자기 몫을 살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동등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연대하는 일상이 하느님 나라의 현재일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는 신비가 빵을 나누는 현재 진행형인 잔치인 것입니다. 이 잔치에서 하느님의 무상성과 보편적 사랑이 구체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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