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고향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면서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인데
그의 가족을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나나 그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그에게만 지혜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를 대하는 데 매번 백지 상태로 대하는 것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즉 어느 한 사람과 관계를 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지식이나 그와의 경험이
쌓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과 경험은
내가 직접 상대방에게서 얻은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받은 것도 있습니다.
암튼 우리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
그는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깊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관계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은 기억은
상대방에게 접근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만듭니다.
물론 이것은 다시 상처 받기 싫은 마음에서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더 큰 어려움은
상대방의 모습은 원래 그렇지 않은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이 드러납니다.
그것으로 예수가
더 나아가 그 가족들이
자랑할 것 같습니다.
그것으로 나 자신을 무시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싫은 나머지
예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 경험은
예수에게서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자랑하던 사람들에게서
받은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 경험을 예수에게 적용합니다.
무시 받은 상처를
더는 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거부가 시작되었지만
나를 무시하지 않는
아니 무시하려는 마음이 없는
예수를 거부하면서
예수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 때문에
예수를 거부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차츰 마음을 열고
그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