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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영성 (통합된 안목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의 방식)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ul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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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영성 (통합된 안목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의 방식)

 

성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신성보다 인성을 더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닮고 따를 수 있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닌 인성입니다. 예수님의 인성 안에 숨겨진 신성을 따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칸의 삶의 방식이 육화에 기원을 둔 하느님의 선하심과 겸손하심을 본받고 따르는 데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가까이 따를 수 있는 실현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하느님의 겸손하심을 사랑하게 된 까닭은 하느님이 자신을 비우고 물질세계에 당신을 숨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가톨릭 전통이라는 역사 안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형성된 하느님의 이미지를 수정해야 했습니다.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한다.” (요한 3,3) 는 예수님의 말씀은 프란치스칸 영성을 배우면서 이분법적이 아닌 통합된 영성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인과응보의 틀과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철저하게 고집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육화에 대한 인식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다 보니 하느님에 대한 막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받게 될 처벌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였고, 멀리 계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개인적인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도덕적 성취만을 우선시하는 영성만이 남게 되었으며, 인간이 가까이 따를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미지만을 조성하였습니다.

 

두려움에 차 있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배타적 순결로 무장한 종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갈라놓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종교에서의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멀리 있으면서 벌을 내리시는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하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을 성스러운 편에 두어야 했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멀리 떠나야 했습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자 둔스 스코투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로 귀결된다고 말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이 한 분이시듯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같은 존재에 참여한다는 통합된 안목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창조된 모든 것은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얼굴이 담겨있다는 말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통합이 아닌 갈라놓음으로써 반쪽짜리 영성을 만들었습니다. 신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성을 저급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육화는 물질세계로 들어오신 하느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물은 속된 것이 아니며 만물은 신성하고 거룩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나눌 수 없는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골로 1,15-17)

 

프란치스칸 영성은 통합하는 영성이지 갈라놓는 영성이 아닙니다. 육신 없는 영혼은 귀신이며 영혼 없는 육신은 시체입니다. 육신을 물리쳐야 할 원수로 여기던 시절엔 나도 그렇게 이분법적인 사고와 가치관에 젖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통합된 인격 안에 육화하신 몸으로 나와 함께 존재하십니다. 이 놀라운 신비에 참여하는 행복이 믿음이 주는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겸손하심이 진리로 드러난 아름다움이며 예수님 안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창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주 작은 존재지만 그분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육화로 말미암아 나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나는 그 희망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나마 예수님을 닮기 위해 나의 일상을 관계성 안에 선이 흐르도록 하려는 의지에 차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에페 5,1) 성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인간성 안에서 하느님의 가난하심과 겸손하심을 발견하였고, 위로부터의 하느님이 아니라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닮으려 했습니다. 나에게 영감을 주고 희망을 준 프란치스코와 보나벤투라, 그의 뒤를 이은 둔스 스코트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그분을 닮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통합적인 안목을 갖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2신자 편지13: “우리에게 모범을 남기시어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회 편지51: “내적으로 깨끗해지고 내적으로 빛을 받고 성령의 불에 점화되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시고”. 비인준 규칙 1,1: “이 형제들의 규칙과 생활은 순종 안에, 정결 안에, 소유없이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비인준 규칙1,2: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비인준 규칙1,3: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비인준 규칙 9,1: “모든 형제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가난을 따르도록 힘쓸 것이며”. 마지막 원의1: “보잘것없는 나 프란치스코 형제는 지극히 높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생활과 가난을 따르기를 원하며, 끝까지 그 생활 안에 항구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분별력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사이가 아니라 겉으로 포장된 것과 깊은 속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깊은 속은 언제나 은총을 보여 주지만 겉에만 머무는 삶은 우리로 하여금 핵심을 놓치게 합니다. 겉에만 맴도는 삶은 모든 것이 속되고 깊은 속으로 들어가면 모든 게 거룩합니다. 자기 잘못으로 깊게 들어가는 것이 하느님을 찾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까지도 거룩함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발견하기까지 프란치스칸 영성은 통합된 안목으로 따름과 닮음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삶의 방식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복음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생명력 있는 개념으로, 어떤 규범들을 실현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으며,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치를 표현하기 위해 프란치스코는 그의 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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