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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7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Aug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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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7일 토요일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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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마태 19,15)

어린이의 특성
우리가 창조주께 다가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피조물의 사악함과 타락뿐입니다. 지혜가 모자라는 것이 그 길을 막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완전함을 추구하시며, 여러분이 다가가는 것은 완전함을 추구하시는 그분께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은 옳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이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하지 않고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혜의 결핍이 어린이들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생각히는 데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1코린 14,20)이라고 합니다. 마르코도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고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루카도 마태오가 앞에서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루카 18.16),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이가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런 자질들을 우리가 선택에 의해 갖추기를 바라십니다. 순박함, 남들한테 당한 해를 쉽사리 잊어버리는 것, 부모에게 매 맞을지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것 같은 것들이 그런 자질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에게 당신의 손을 얹으신 것은 안수가 하느님의 권능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라오디케아의 아폴리나리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9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루카 21,31),
우리는 엑카르트가 하느님 나라를 천국, 영생,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또한 그는 하느님 나라를 하느님의 복과 연결 짓는다. 그는 이렇게 하기 위하여 야곱의 꿈을 두 차례나 인용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꿈속에서, 하느님은 “땅에 사는 모든 종족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한다. 야곱이 꾼 꿈의 주제는 복이다. 그 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참말 야훼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앞에 소개된 여덟 개의 설교에서 살펴보았듯이, 엑카르트의 창조신학 전체는 복의 신학이다. 생명은 전부 창조주의 선물이자 복이다. 존재, 생
명, 존재의 평등, 신성의 공유도 창조주가 내려준 복이다. 하느님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의 천 배라도 주고 싶어 하는” 게 바로 그러한 복이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수용성을 요구한다. 엑카르트와 예수도 우리의 수용성을 강조한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어린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마르 10,15). 복음서들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회개 및 메타노이아 혹은 마음의 변화와 연결짓는 반면, 엑카르트는 하느님 나라를 깨달음과 연결짓는다. 엑카르트가 말하는 회개와 메타노이아는 다음과 같은 뜻이다: 우리가 창조주의 은혜로운 축복의 그물 속에 들어 있음을 깨닫는 것, 하느님 나라는 준비되어 있다. 우리가 받아들일 채비만 한다면 말이다.(222)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8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유다 1장 / 루카 1-4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이슬람교의 분파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유대인과 아랍인의 전쟁에서 '성전'은 없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지휘관들이 “하나님이 북군 편을 들어 주도록 기도하자”고 했을 때, "하나님께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 북군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군대가 되도록 기도하자'라고 말했던 링컨의 태도는 훨씬 더 신앙인다운 태도이며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전쟁은 범죄이고 악일 수밖에 없다. 다만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지적한 대로, 인간의 집단 이기심으로 인해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더 큰 악을 견제하고 징치(懲治)함으로써 더 작은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인간 상황 때문에"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념은 결국 정의롭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려는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진 ‘거룩한 것을 지향하는 열정이 ‘하나님의 뜻과 명령' 이라는 신앙 고백적 반향으로서 울려퍼지는 종교적 이데올로기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성전'(聖戰)은 없는 것이다.(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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