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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4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Sep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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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9월 4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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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루카 4,42)

외딴곳으로 가시다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외딴곳은 창조주께서 자주 머무르시는 곳입니다. 말씀께서 전에 구름에 감싸여 나타나셨던 곳에 몸을 입고 나타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광야와 외딴곳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이사 35,1 참조)고 이사야가 예언했거니와, 율법을 위하여 예언되었던 그곳은 복음을 위해서도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10 하느님은 기뻐하고, 고난을 겪고, 복을 주고, 위로하신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이사 49,13).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요한 8,12)
다른 자리에서 엑카르트는 하느님이 창조계를 보고 미철 듯이 기뼈한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기쁨과 황홀을 충분히 찾아낸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느님 자신과 다르지 않다." 하느님 안에 거하는 모든 피조물의 깊숙한 내면에는 하느님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준다.
하느님은 평등을 기뼈하십니다. 하느님은 평등 속에서 자신을 통해 자신의 본성과 자신의 존재를 퍼부으십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분의 기쁨입니다. 한 마리 말에게 평평하고 고른 풀밭 위를 달리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말은 풀밭 주위를 뛰면서 자기의 모든 힘을 아낌없이 발산하려 할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힘을 아낌없이 발산하는 것이 말의 본성일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말의 기쁨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평등을 발견하시고는 기뻐하시고 만족하십니다. 하느님이 자신과 똑같은 형상 속에다 신적인 본성과 존재를 아낌없이 쏟아 부으시는 것이야말로 그분의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상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234)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9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루카 11-1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7절: 대 탁발수도회
프란치스코와 그의 수도회:
그의 이념은 전대미문의 속도로 전파되었다. 그는 속죄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 스페인을 널리 돌아다녔다(1214/1215). 그는 카타리파와 무어인들을 개종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무력과 권력으로가 아니라 완전히 작은 형제(fratres minores)로서 -
그는 자기자신과 동료들이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였다 - 사랑과 겸손과 기쁨으로였다. 그는 모로쿄로 건너가려 하였으나 병 때문에 가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1215년에 아씨시로 돌아왔다.
그의 수도회의 약진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출현은 도처에서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깊은 민중운동을 일으켰다. 젊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는 교황과 주교들의 신뢰와 함께 단순한 주민들의 신뢰도 얻었다. 그에게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1219년 이집트로 향하는 십자군을 따라갔을 때, 그는 다미에타에서 전투하고 있는 사람들을 뚫고 술탄에게 가서, 그에게 구세주의 사랑을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그는 십자군의 사명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무기로 정복하는 대신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1221년 자신의 수도회에 완전히 그의 정신과 복음에서 나온 회칙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회칙은 이미 유럽의 절반 이상에 퍼져 있는 형제회의 거대한 조직적인 사명에 합당해 보이지 않았으므로, 후에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된 우꼴리노 추기경과의 공동작업에서 수정되어 1223년에 인가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완전히 그의 이상대로 생활하기 위하여 지도직에서 물러났다.(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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