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6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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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5-27)
원수를 사랑 하고 가족을 미워하라는 역설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말씀은 이제 막 그리스도의 계명을 쫓아 살기로 결심한 햇내기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당황스런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모순처럼 들릴 것입니다 ... 그분은 제자들을 영원한 나라로 부르시려고 당신 몸을 낮추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지요. 그 나라는 모든 인간관계를 넘어섭니다.
거기에는 “유다인도 그리스도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 콜로 3,11).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 22,30). 그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람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이승의 삶을 받쳐 주는 지상의 관계들과 출생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일시적인 삶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태어남도 죽음도 시집 장가도 없는 다른 생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설교 12
하느님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기
정신과 영을 새롭게 하여(에페 4,23).
깊이를 헤아릴 수도 알 수도 없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모든 표상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느님을 영혼 안에서 발견하려면 더해서는 안 되고 덜어 내야만 한다." 이 ”덜어 냄“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 됨 및 단순성과 접촉할 수 있다. 하나 됨과 단순성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깊이 현존하고 있는 하느님에 관한 지식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느님 아닌 분. 마음 아닌 분, 사람 아닌 분. 표상 아닌 분을 만날 수 있다.
하느님을 무심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마음을 여의고, 모든 사고 활동을 여읜 것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마음처럼 작동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은 표상들과 상들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표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은 매개물들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매개물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은 하나가 되지도 못할 것이고, 단순해지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혼은 마음을 여의고, 무심의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274)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1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1테살 3-5장 / 2테살 1-3장 / 히브 1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9절: 인노첸시오 3세부터 보니파시오 8세까지의 교황직
그레고리오 7세 교황과 더불어 시작된 발전은 인노첸시오 3세하에서 교황권을 세계적 세력의 정점으로 이끌었다. 인노첸시오 3세에게서 “교황권은 현기증을 일으켜 견지하기 어려운 정점에 도달하였다”. 이제 서구 그리스도교계의 승인된 우두머리는 이미 황제가 아니고 명백히 교황이었다.
1197년에 하인리히 6세 황제가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던 중, 두 살짜리 아들 프리드리히 2세를 계승자로 남겨놓고 32세로 사망하고, 몇 달 후 로마에서는 노쇠한 첼레스티노 3세 (1191∼1198)의 뒤를 중세의 가장 강력한 교황으로 37세의 정력적인 인노첸시오 3세가 이어받았을 때 그것은 갑작스러운 장면의 변화였다. 독일에서는 황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제국의 붕괴룰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제 교황직이 전 서구교회에 대한 수위권적 지위를 완전히 성취하는 동시에 유럽 사회에서 중앙지배적이며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다.
인노첸시오 3세:
그레고리오 7세가 「교황 훈령」에서 요구하였던 것이, 항상 그레고리오 개혁을 추구한 인노첸시오 3세하에서 실현되었다. 그는 최고의 입법자요 재판관이며 관리자로서의 “전권”을 지니고, 이 최고의 권력을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전 교회에 행사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서구
의 그리스도교계와 일치되어 있었으므로, 민족들의 정치적인 운명도 그것과 무관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아우구스티노의 신국사상은 일반적으로 진본으로 인정되던 「콘스탄티누스의 증여」 문서로 뒷받침되어, 교회를 참된 로마 제국으로 나타나게 하여 교황에 의한 세계 지배 이념을 낳았다. 이것은 당시의 종교적 . 정치적인 사고에 깊이 뿌리를 둔 것이었고, 또한 쇄신된 교황직이 서구 그리스도교계를 위하여 느끼던 그리스도교적인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구의 “그리스도교 백성”은 초자연적인 공동체였고, 교회 백성 전체의 초국가적인 공동체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교황은 “그리스도교계의 우두머리”로서 많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그러나 동일한 신앙으로 통일된 서구세계의 머리요 지도자가 되었다.(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