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 말씀을 우리는
마태오복음에서 탈렌트의 비유로 들었습니다.
표현이 마태오와 조금 다른 것도 있지만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루카복음은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마치면서 또 한 번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은
메시아로서 다윗 도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은
메시아 시대의 시작을 뜻했습니다.
해방의 날이 왔고
구원의 날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심판의 날이기도 합니다.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민족들은 심판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심판과도 연결됩니다.
그렇게 마태오복음은 탈렌트의 비유에 이어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심판이 언급되는데
그 심판의 기준은 마태오와 조금은 다릅니다.
주인이 세 번째 종에게 말합니다.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여기에서 '종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
그가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연결됩니다.
즉 주인을 냉혹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그를
주인은 냉혹하게 대합니다.
마태오가 우리의 행실을 심판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루카에서는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 기준이 됩니다.
자비로운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그 심판은 자비롭게 진행될 것이고
무서운 심판자라고 생각하면
그 심판은 가혹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 세상의 삶과도 연결됩니다.
첫 두 종은 셋째 종과 다르게
주인을 생각했기에
자신의 일에 성실할 수 있었습니다.
행실이 중요하다는 것은
마태오와 비슷하지만
그 출발점을 루카는
하느님에 대한 생각으로 잡고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하루 아침에 결정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삶의 경험이
그것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면서
자비의 아버지 모습도 함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