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을 읽고 청원기와 이번 여름의 무전 순례가 생각이 났습니다.
물론 복음처럼 완전히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복음 말씀을 실천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대해서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필요 할 때에 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뻗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저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이 어쩌다 도움이 된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는
그러한 도움들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은총의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그들에게 당부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이 말씀은 결국 아무것도 없이 떠나도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뜻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 제자들이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지시 사항에 따를 리 없었을 것입니다.
먼 길을 떠나는 데 아무 것도 없다면 불안하고 초조해서 여행이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허기를 채울 만한 것도 없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이렇게까지 제자들을 파견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필요한 것을 챙겨갈 수 있었다면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으며 어쩌다 도움의 손길이 와도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여행이 단지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중간에 하는 일,
즉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에만 몰두 할 뿐
여정 안에서 자신들에게 베풀어지는 은총은 체험하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이 떠나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러 제자들을 보냈지만,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을 체험해 보라는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인준받지 않은 수도규칙 14장에서
형제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돌아다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루카 복음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부님 또한 복음 그대로 실천하며 사시면서 주님의 사랑을 몸소 체험하신 분이시기에
형제들에게도 적극 권하시지 않을 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줄까요.
아마도 그것은 어려움과 고통,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불안 안에서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별 볼일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 없는 순간이 바로 주님의 은총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세상을 돌아다닐 때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무엇을 더 가지려 들기보다는
주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욕구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충실히 하루를 주님께 내 맡기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주님께 내어 맡길 때 그 분의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고 불확실과 불안정 가운데서도
전혀 동요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