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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Dec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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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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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8-29)


천사의 특별한 인사말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넨 인사말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입니다. 이 표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지요.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저는 성경 다른 곳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이 말을 듣는 것은 남자가 아닙니다. 이 인사는 오직 마리아를 위한 것이었습나다.


-오리게네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4


하느님이 그대 안에서 하느님 되게 하라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1요한 4,9)


하느님은 피조물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십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느님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벗어나서,하느님을 여러분 안에 모셔 들이기만을 바라십니다. 여러분 안에서 형성된 것이 아무리 작은 피조물의 이미지라 해도, 그것은 하느님만큼이나 큽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막아, 통짜이신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이러한 이미지가 생성되는 순간, 하느님과 그분의 신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와 반대로, 그 이미지가 빠져 나가는 순간, 하느님은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느님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십니다. 마치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데에 하느님의 기쁨이 달려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이 하느님으로 하여금 여러분 안에서 하느님 되게 할진대, 무엇이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느님을 위하여 여러분 자신에게서 벗어난다면, 하느님도 여러분을 위하여 스스로에게서 벗어나실 것입니다. 이 두 존재가 빠져 나오면, 단일한 하나만이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는 자신의 가장 영적인 근원에서 아들을 낳으십니다. 성령이 거기에서 꽃을 피우고, 영혼의 의지도 거기 하느님 안에서 싹틉니다. 모든 피조물과 창조계의 방해를 받지 않는 한, 이 의지는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쩨서는 이렇게 말씀하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말고는 아무도 하늘로 올라간 적이 없습니니다“(요한 3,13). 만물은 무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들의 근원은 무입니다. 때문에 이 고귀한 의지가 피조물에게로 쏠릴 경우, 그것은 피조물과 함께 무로 흘러들고 말 것입니다.(300)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7-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아우구스티노


성체성사에 대하여(강론 272)


강론 6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악으로부터 시달리고 고통을 받으면서 불평을 하고 호소를 합니다. 이들은 불평과 반항으로 자신의 심판자를 모욕하고 동시에 구원자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은 이 세상에서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악은 영원히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한시적인 악은  오직 이 세상 안에서의 삶에만 관여할 뿐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거치면서 이 악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매우 짧은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매우 큰 고통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어제의 일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립니다. 모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내일의 일들에 대해서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시간속에서 지나가고마는 고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생각과 노력을 한다면, 영원히 지속될 고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까? 

죽어 가는 사람의 삶은 매우 힘들고 비참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고 고달픈 삶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은 바로 그가 앞으로 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에 대한 표시입니다. 이러한 고달픈 인생살이를 해야 하는 것은 누구도 면제될 수 없습니다. 아담이 우리에게 넘겨준 잔을 우리는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긴 했습니다만 죄의 결과로 허영에 빠져 들어 있습니다.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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