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22일 대림 4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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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대림 4주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대림 제4주일이며 예수 성탄 대축일 준비의 절정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지난 대림 3주일의 복음이 기쁨에 대해서 얘기했다면 오늘 대림 4주일의 복음은 행복에 대해서 말합니다. 기쁜 성탄 준비를 위해 마리아와 같이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복음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가장 복된 여인으로 칭송할 수 있었던 것은 마리아의 순종적인 참된 겸손과 마음의 평화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리아의 마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겸손을 바라보면서 구체적으로 우리는 삶안에서 어떤 겸손을 지녀야 하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보호하려 하고 그 사람을 위해 책임을 지려하며 다른 사람의 약점을 참아주려하고, 특히 그와 함께 행복과 불행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나와 다르고 낯선 사람을 위한 투신의 삶, 다른 사람의 힘든 처지를 받아들일 줄 아는 개방된 자세, 아무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의 삶을 긍정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마리아의 기쁨안에 담겨져 있는 평화로운 모습속에서 복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평화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음은 행복에 이르기 위한 길입니다. 평화로움은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하는 힘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쁨과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평상심입니다.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동요하지 않고 순종하는 마리아의 평화로운 마음처럼 어떤 고통과 박해에 직면해서도 두려움을 갖거나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 아오스딩의 고백처럼 하느님과의 근본적인 사랑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행복의 가장 올바른 정의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완전한 자기실현의 결과이며 자기의 부족함을 먼저 각성하지 않고는 완전한 자기실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서 참된 행복에 이르지 못합니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수렴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나되는 삶을 사는 길 말고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행복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참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체험에서 이러한 행복을 발견합니다. 성 아오스딩은 “삶의 참된 행복은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는 “가장 완전하고 가장 행복한 구원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참으로 행복할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이미 와 계심을 말해 주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마리아 처럼 모든 일을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겸손의 사람,
어떤 고난과 역경에속에서 평화를 간직하는 사람,
그리고 하느님 사랑으로 모든이들 대하고 모든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이 될 때
마리아처럼 진정 복된 사람이고 그 사람안에 아기 예수가 잉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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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4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15-2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성도(聖徒) 이야기
앞서는 두 개의 주를 가지고 있는 운터발덴(Unterwalden)이 언급되었다. 이 운터발덴은 작은 세모꼴의 나라이다. 이 나라는 엔겔베르크(Engelberg) 산을 통해서 이탈리아와 접해 있었다. 이 산은 옛날에 천사의 요청으로 이 곳에 수도원이 세워졌다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독일과 인접한 곳에는 다른 높은 산이 우뚝 서 있다. 이 산은 프락콘트(Frackont)라 불리우며, 그 끝이 구름에까지 뻗어 있기 때문에 보통은 빌라도산(Pilatusberg) 이라고도 한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산의 꼭대기에는 작은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이 호수에서 천국에 가지 못한 본시오 빌라도가 악마에 사로잡혔었다고 한다. 갈리엔(Galien : 프랑스)과는 브뤼니히(Brunig)가 인접해 있는데, 이 브뤼니히는 그 끝이 별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상당히 높은 산이다. 이 산은 사방이 트여 있어서 건너서 넘어갈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 나라가 양 측면, 가파른 계곡 기슭에 커다란 숲이 놓여 있고, 그 숲속 깊은 곳에 이 나라가 있어서 기름지고 초목이 무성하기 때문에 운터발덴이라 불리게 된 것 같다. 이 나라는 호수와 목초지, 그리고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 많다. 또한 이 나라는 비르질리우스 (Virgilius)가 노래하고 있듯이 커다란 숲을 중심으로 둘로 나뉘어져 있다.
“도시 가운데는 쾌적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숲이 있다" 이처럼 그는 카르타고(Karthago) 쪽의 높은 봉우리에 대해서 노래 한다.(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