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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 (성탄절 묵상)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Dec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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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 (성탄절 묵상)

 

성탄은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을 볼 수 있는 하느님으로 경험하게 하신 육화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비는 육화의 신비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육을 선택하셨기에 볼 수 있는 물질세계에서 그분을 발견하고 만나고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말씀이 사람의 육신으로 되었기에 하느님을 지금 여기서 오감으로 경험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느 한순간 육화가 있으면 다른 곳에는 왜 없겠습니까? 온 우주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육화된 말씀을 경험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중요해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 안에 당신을 감추십니다. 그래서 오직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만이 그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의 살아있는 무수한 개체 안에서 발견하는 육화의 신비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이 진리로 표현된 말씀으로 인식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처음 만난 곳 그곳은 말구유였습니다
. 말구유 같은 우리의 관계들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선으로 관계를 살리시는 하느님의 뜻이었으며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몸짓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가난하심과 낮추심이 육화의 겸손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위대한 사랑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내려가는 길이 진리요, 내려놓는 길이 아름다운 길이며 허용하고 놓아주는 길이 해방과 자유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와 하나가 되고자, 우리와 동등해지고자, 우리를 섬기기 위해 겪으셔야 했던 하느님의 갈망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일깨워 또 다른 사랑으로 전달되며, 선은 그렇게 자발적이며 확산하는 신비로 관계를 비춥니다.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의 처지에까지 내려오신 성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사랑을 찾다가 사랑을 만나 사랑이 되어가는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창조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말씀과 실천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나를 도구 삼아 선을 행하십니다. 따르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육화의 신비 안에서 우리는 참된 자유와 기쁨과 해방을 경험합니다.

 

예수를 따르다가 사랑을 배우고, 용서하는 사랑이 내어주는 몸이 되는 신비, 길에서 길을 만나 길이 되어가는 도구적 존재로 육화의 겸손한 사랑을 배워 관계 안에 선으로 태어나는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어주는 사랑이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왔다면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관계 안에 사랑을 낳습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노래로 이를 증명하셨습니다. 내어주는 사랑과 받아들이는 사랑이 만나는 곳에 하느님의 현존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인간의 갈망과 인간을 찾으시는 하느님의 갈망이 만나는 곳에 하느님의 현존이 있습니다. 그리움은 그리움을 낳고 원천의 그리움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었기에 그리움은 우리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갈망으로 인도해 줍니다.

 

하느님의 가난하심과 겸손을 배우는 현장에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있으며 나약함으로 나약함을 구원하시는 육화의 신비가 있습니다. 인간과 동등해지기 위하여 하느님의 동등성을 포기하신 예수님의 육화는 사랑의 신비이며, 사랑은 동등할 때 사랑하기 쉽고, 더 낮아져서 겸손하게 섬길 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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