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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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계셨다’와 연결되어 무한을 나타내는 ‘처음’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해 안 가까이에서 항해할 때는 도시들과 항구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기지만 넓은 바다에 이르면 모두 사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복음사가도 여기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피조물의 세계를 넘어서서
끝이 없는 빈 공간을 응시 하게 합니다....
‘한처음’이라는 말에 이르면 지성은 ‘한처음이라니?’ 하고 묻습니다. 자신의 상상력으로는 본문에 나오는 ‘계셨다’ 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지성은] 생각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열심히 위를 살펴보아도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다가 지친 지성은 결국 아래 에 있는 것들에 눈길을 돌립니다. 실로 ‘한처음에 계셨다’라는 말은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4
하느님이 그대 안에서 하느님 되게 하라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1요한 4,9)
성서 말씀에서 요한은 우리를 가리켜 “하느님의 자녀”라고 부른다. 엑카르트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일컬어지려면 살며 사랑하며 일하는 하느님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유 없는, 길 없는 길이다. 이러한 삶과 일만이 기도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그것은 힘이 넘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가장 힘이 넘치는 기도, 만물을 손에 넣을 만큼 가장 강력한 기도, 그리고 가장 일답고 할 만한 일은 무심에서 비롯됩니다. … 무심은 그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삶의 방식도 우선시하지 않습니다.
...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해도, 이러한 원천에서 힘을 끌어내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유 없이 사는 삶은 선물을 누리되 그것을 넘어서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은 피조물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자기를 여의고 모든 선물을 누리는 법을 배우십시오. 자기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간직하지 마십시오. 이익이든 즐거움이든, 헌신이든, 감미로움이든, 보상이든, 천국이든 아니면 아집이든 간에 어떠한 것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면 자신을 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면 자신을 내주시지 않으십니다.(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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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또레 평화기도 제5주간 생태 회심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화요일 성령(성시간)의 날
2. 빙엔의 힐데가르트, 정홍규
힐데가르트와 음악
힐데가르트는 마음에 가장 깊이 다가오는 것들을 설명할 때 늘 푸르름이나 빛의 광채 또한 소리의 울림이란 표현으로 시작한다. 음악은 푸르른 생명의 힘, 창조의 광채와 함께 힐데가르트의 중심되는 주제였다. 그녀는 결코 음악대학에 다닌 적이 없었다. 마인츠의 프렐라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듯이 힐데가르트는 스스로 예언자로서 작곡해야 할 과제를 받았다고 여겼다. 인간이 자신의 근원을 기억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예언자의 과제이다. 중세의 음악이론에 따르면 특별히 음악이 여기에 잘 부합된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악, 노래와 악기연주가 인간에게 귀로 들을 수 없는 인간의 음악과 세계의 음악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은 모든 것을 신선하게 하고 정화하고 거룩하게 하고 치유하는 영혼의 능력을 일으킨다. 그래서 음악, 멜로디와 리듬은 인류의 오랜 치료방법이기도 했다. 음악은 영혼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영적인 치유 과정을 이끄는 감정, 기분, 정서룰 불러일으킨다. 힐데가르트는 음악에서 선한 힘, 슬픔과 걱정, 염려와 분노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그 치유하고 변화되는 힘을 보았다. 그녀는 음악치료의 선구자이다. 음악을 치료 도구로 이해했다.
태초에 ‘말씀’ 이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당신의 '살아있는 소리’를 담아 놓으셨다. 음악은 영혼에 울려 평상시 우리가 잊고 있는 이 깊은 곳의 울림, 천상의 고향을 기억하게 한다. 음악과 시의 대모음집 「천상 계시의 조화의 교향곡」은 인간이 “살아있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찾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힐데가르트에 있어서 영혼의 협주곡인 음악은 근본적인 개념이다. 음악은 치유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며 쇄신할 수 있게 한다. 영혼과 마찬가지로 음악은 천상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지상과 천상을,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울림 안에서 서로 고유의 중심을 향하여 연결되는 원형의 춤을 치유의 방법으로 다시 찾으려는 오늘날 영성의 움직임을 이미 보여주고 돌려주었던 힐데가르트의 비전이 이렇게 눈과 귀로 온 몸과 마음을 울려준다.
“예술은 모두 하느님의 숨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