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완고함을 생각하면 꿈쩍도 하지 않음이 즉시 연상됩니다.
물론 아무리 모욕을 주고 공격해도 꿈쩍하지 않음처럼 좋은 뜻의 말이 아닙니다.
나쁜 고집이며 새로움을 거부하는 것이며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입니다.
그것이 오늘 서간 말씀과 연결하면 ‘오늘’을 받아들이지 않음입니다.
오늘이 오늘이 아닌 사람에게는 오늘도 어제입니다.
우리는 오늘이 되면 오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이 되면 오늘을 열렬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이 됐는데도 오늘에 무관심하고 민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거를 고집하는 셈이 되고 화석처럼 과거의 나로 굳어져 버릴 것입니다.
지난 연말연시를 저는 동해 바닷가에서 피정하며 보냈습니다.
저는 매일 일출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러 나가지 않고
길 가거나 일하는 사람들 아무도 해 뜨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 몇 가지.
해는 뜨는 것을 보지 이미 떠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해는 보려는 사람이 보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지 않는다.
일출을 못 보던 사람이 보려고 하지 늘 보는 사람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튼 정월 초하루 무안 공항 참사 때문에 조심스러운 상황인데도
그래도 일출을 봐야겠다고 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실 해는, 새해 첫날의 해나 다른 날의 해나 똑같은 해입니다.
하지만 새해 첫날엔 해맞이를 특별하게 함으로써
특별한 해가 되고 의미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해의 첫날만 그렇게 특별히 맞이하지 않고,
매일 특별하게 맞이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진정 늘 보는 사람을 처음 본 듯이 보고
새해 첫날 해맞이하듯 보면 그것이 사랑이고 그러면 행복할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와 하느님 말씀도 오늘 듣게 되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안 듣고 내일 듣겠다거나 옛날 들은 것을 재탕으로 듣지 않고,
오늘 들으면 그것이 주님께 대한 사랑이고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