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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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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마르 7,24)
영적 해석
접경 지역에 사는 다른 민족 사람들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죄를 지을 때면 우리도 티로와 시돈 파라오와 이집트 땅의 접경에서 살아가는 셈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느님의 상속재산을 받지 못한 이들의 접경 지역에 있습니다.
접경 지역에 사는 다른 민족 사람들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죄를 지을 때면 우리도 티로와 시돈 파라오와 이집트 땅의 접경에서 살아가는 셈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느님의 상속재산을 받지 못한 이들의 접경 지역에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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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5
철저한 버림은 참으로 그대로 두는 행위다
그대로 둠이야말로 만물을 존경하고, 만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허락하는 태도다. 버림과 그대로 둠의 길이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을 억누르는 길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버림과 그대로 둠의 길은 사건들과 사물들을 존경하는 길이자 그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존경이야말로 온화한 방임이다. “여러분의 앞길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참된 겸손과 사심 없는 마음으로 온화하게 대하라." 그러한 존경과 그대로 둠의 태도는 사물에게서 달아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들에게로 되돌아가서 그들을 새롭게 볼 것을 요구한다. 카푸토는 이렇게 말한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버릴 줄 아는 사람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해한다:
버릴 줄 아는 사람은 모든 자기 사랑을 여윈 사람일 뿐만 아니라, 마르타처럼 사물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 피조물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사람, 피조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대로 두는 사람이기도 하다.(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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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19-21장 /마태 1-4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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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5 장 두 천사 세상을 떠나다
성체의 예수님과 함께 희생이 되다
마지막 날의 사연들
앞서 본 바 있는 리스본의 부유한 가정은 히야친따의 체류를 약속했는데 그녀의 병세를 보고 너무 놀랐는지 받아들이기를 꺼렸다. 어머니 올린삐아는 할 수 없이 마리아 고딘호 수녀가 경영하는 고아원 “기적의 성모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 사람들은 히야친따를 친절히 맞아들였다.
히야친따가 여기에 입원하자 즉시 한 부인이 찾아와서 기도를 부탁하고 동시에 입원비로 50에스큐도를 지불해 주었다.
고딘호 수녀는 그 당시 25명의 여자 아이들을 맡고 있었는데 그 중 몇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료였다. 고아들은 원장을 “대모님”이라 불렀다. 히야친따도 “대모님”이라는 이름으로 원장과 친근해졌고, 고아원을 “파티마의 성모의 집”이라고 불렀다.
히야친따는 여기에 두 주간만 있었는데 그 친절함, 신앙심, 인내, 겸손, 그리고 은인들에게 냐타낸 측은할 정도의 감사의 정은 원내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실상 새 입원자의 덕행은 이웃들에게 훌륭한 영향을 끼쳤다. 히야친따는 스스럼 없이 ‘천국에 가고 싶으면’ 순종하고 용감하며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모두를 격려했다.
여기에 공식 심문에서 그 원장이 진술한 증언을 기록하겠다.
히야친따는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적게 먹으며 자신의 불편을 탄식하지도 않았고 날마나 로사리오를 드렸다. 그녀는 절대로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녀 앞에서 사실을 왜곡되게 말하는 자가 있을 때면 가차없이 그 점을 나무라고 바로잡았다.
그녀의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은 성당에 가는 것이었다. 성당에서 떠드는 아이가 있을 때 곧 조용히 하라는 충고를 하기 때문에 퍽 많은 항의를 받았으나 히야친따는 그것을 주님께 바치는 꽃다발로 말없이 참았다.(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