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복음에서 모두 열림이 일어납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는 눈이 열려 자기의 알몸 곧 죄의 부끄러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복음에서는 눈이 열려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보고 입은 찬미를 드립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이것을 볼 때 누구는 자기를 보고, 누구는 하느님을 보고,
누구는 자기 죄를 보고, 누구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며,
누구는 장점을 더 보고, 누구는 단점을 더 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볼까요?
제 생각에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봅니다.
자기 안에 미움이 있으면 모든 것을 밉게 보고,
자기 안에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곱게 보곤 하지요.
어둠이 있으면 어둡게 보고,
빛이 있으면 밝게 봅니다.
자기 안에 욕구 또는 욕망과 욕심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욕구만 있어도 자기가 욕구하는 그것만 보게 되고,
욕망과 욕심이 있으면 더더욱 그것만 보게 됩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그러합니다.
욕구하는 것을 보자 탐심이 발동되면서
그것이 좋게 보이며 소유하고 싶어집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순간 하느님을 놓칩니다.
그것에 시선을 뺏겨 하느님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다음에는 숨기에 놓치기도 합니다.
욕심내던 것을 보던 눈이 이때부터는 죄지은 자기를 보며
자기 죄를 감추고 자기를 숨기려다 하느님을 놓치는 겁니다.
하느님은 놓치고
죄지은 자기와 욕망의 허망함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망 대신 갈망이 있으면 달라집니다.
욕망이나 갈망이 모두 결핍감에서 비롯된 면에선 같지만
욕망이 아담과 하와처럼 많이 소유하고 누리고 있음에도
더 소유하고 싶은 탐욕적인 결핍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갈망은 오늘 복음의 가난한 사람들처럼 너무 가난하기에
생존이 위협받는 사람들의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욕망이 풍족한데도 불만을 채우려는 것이라면 갈망은 살려는 것이며
욕망이 스스로 채우려는 것이라면 갈망은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고,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기를 바라기에 채워줄 구원자를 바라게 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비교하면
욕망이 이것저것 진탕 먹고 마시면서도 더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은 것이라면
갈망은 가뭄으로 바짝 타들어 가는 벼처럼 비 한 방울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타는 목마름이고 그래서 비를 내려주십사고 하느님께 빌게 하는 목마름입니다.
어쨌거나 욕망은 욕심에 눈이 멀어 죄짓게 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숨게 하는 데 비해
갈망은 타는 목마름으로 구원자를 찾게 하고 뵙게 하는 것임을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