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어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베드로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하신 주님께서
오늘은 당신 제자라면 당신 뒤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에 저는 ‘내 뒤를 따르려면’이라는 말씀을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그저 ‘나를 따르려면’으로 대충 알아들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주님 뒤를 따라야 함을 명확히 깨닫게 되고 묵상케 된 것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면서 제가 주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 이유도 묵상해봤습니다.
저는 여자 꽁무니를 따르느라 주님의 꽁무니를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느라 주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똘마니가 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기에
인간 누구를 추종하다가 주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한때 저는 주님보다 프란치스코에 더 열광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뭣 때문입니까?
나 때문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 것은 단연코 나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당신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라고 하시는데
그 버려야 할 나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자주 나의 길, My way를 걸으려고 하기에 주님 뒤에 있지 않고,
주님과 상관없이 떨어져 있거나 있고 싶은 곳에 자유로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겠습니다.
나의 길을 가는데 주님께서 내 앞길 편한 길 되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하기보다는 꽃길을 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주님 말씀을 따를 수 없겠지요.
그리고 남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해도 지지 않고,
자기 십자가인데도 남의 십자가라고 하며 남들에게 미룰 것입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제가 제 십자가를 남의 것이라고 하며 제 십자가를 지지 않기에
마치 자기 짐을 지지 않는 자녀의 짐을 부모가 대신 지듯이
주님께서 제 십자가를 대신 지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십자가의 길 제5처를 할 때마다
시몬이 주님을 도와 주님의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시몬이 져야 할 십자가를 주님께서 대신 지신 것이라고 묵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십자가를 남에게 또 주님께 미루지 말고,
내 십자가로 우선 받아들일 것이고 그다음엔
그것을 내 십자가를 대신 져주시는 주님과 함께 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십자가를 대신 져주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시몬처럼 대신 져드리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권고 5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대의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대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를
매일 지는 일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내 십자가는 내가!
이것이 오늘 우리가 다짐해야 할 것이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