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눈이 죄짓게 하면 눈을 빼버리라고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그런데 우리 눈이 죄짓게 하면 주님께서 제 눈을 빼버리실까요?
우리는 주님께서 그러실 리 없다고 믿고 싶고
그래서 실제로 믿고 싶은 대로 믿고는 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노자가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말했듯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날 때 그때도 인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 집회서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인자함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 하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 위에 머무르리라.”
이 말씀을 뜯어보면 하느님은 마냥 인자하신 분이 아니시고,
죄를 지어도 언제까지나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고 다만
분노에 더디실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도 복음 다른 곳에서 비유를 드신 바 있지요.
어떤 사람이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나무를 심었는데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포도 재배인에게 그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하는데
포도 재배인은 주인에게 한 해 더 말미를 주면 공들여 키워보겠다고,
그랬는데도 열매 맺지 않으면 그때 가서 베어 버려도 되지 않겠냐고 하지요.
여기서 포도 재배인은 예수 그리스도시고 밭의 주인은 하느님 아버지이신데,
주님께서 그리 애쓰셔도 끝내 회개의 열매 맺지 않는 자는 하느님 아버지께
단죄받는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주님 말씀은 지엄하고 가혹하지만 사랑이고
그 사랑은 구원의 사랑이요 이 악물고 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사랑이요 이 악물고 하는 사랑이라니 뭔 뜻입니까?
그것은 눈을 빼고 다리를 자르는 것이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살리기 위해 의사가 이 악물고 다리를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기 전에
구원을 위해 스스로 가혹하게 자기 죄를 끊어버리라는 말씀이고
다리를 끊어버리기 전에 죄를 먼저 끊어버리라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어쨌거나 가혹함과 단호함에서 사랑을 읽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