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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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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마르 10,13)
회개에서 면제된 이는 누구인가?
자유롭게 의지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나이의 사람이 신자들의 성사를 받고자 할 때, 옛 삶을
회개하지 않으면 새 삶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아세례 받는 아기들은 이 의무에서 면제됩니다. 그들은 아직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에 데려오는 이들의 신앙은 유아의 성화와 원죄의 용서에 유익합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죄에 얼룩진 채 태어나지만, 또한 다른 시람의 물음과 응답을 통하여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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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6
의지를 버려라
모세는 그의 하느님 야훼께 애원했다(탈출 32,11).
엑카르트는 이 구절물을 설교에 자주 인용한다. 그는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구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자기의 이익을 구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서로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는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의 의지를 보답으로 받는다. 그리고 하느님의 의지는 그 사람의 의지가 된다. 엑카르트는 하느님과 우리가 뜻을 주고받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느님의 뜻이 여러분의 뜻이 된다면,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뜻을 주고 받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 되게 하고, 우리의 의지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하느님과 더불어 뜻을 주고받을 수 있다. 엑카르트는 모세가 화난 하느님을 대하는 대목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모세야, 내가 화내는 것을 내버려 두어라. 나에게 이것을 숭인하고 허락해 다오. 내가 화를 내어 백성에게 앙갚음하는 것을 허락해 다오.” 사실상, 이말은 엑카르트가 성서 말씀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것은 엑카르트가 보다 단순한 성서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보여 준다. 성서 말씀은 다음과 같다.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진노를 내려 저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리라”(탈출 32,10).. 엑카르트는 설교 15에서 하느님을 버리는 것에 대하여 말했다. 이제 엑카르트는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하느님의 바람을 귀담아들으라고 요구한다. 즉, 우리는 하느님의 진노를 진노로 내버려 두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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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 읽기>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9-1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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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하느님 신앙과 동학의 시천주
우리의 목적은 한민족의 하느님 신앙이 동학(천도교)에서 어떻게 체험되고 나타났는가를 살피는 데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동학의 핵심 교리가 담겨진 ‘강령 주문’ 21자와 그 안에 나타난 ‘시천주’의 의미를 깊이 살펴보려 한다. ‘강령 주문’ 21자는 다음과 같다. ‘주문’ 이란 동학에선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 이라는 의미다.
“지기금지(至氣今至)원위대강(願爲大降)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지(萬事知)”.
“지극한 기(氣) 이제 여기 이 몸에 크게 강림하시기를 기원하노이다. 한울님을 모실지니 그리하면 자연스레 만물이 제덕에 합하고, 영원히 잊지 말고 지성으로 모시면, 만사를 환히 깨달아 알게 될지로다” 라는 뜻이다.
‘지기' (至氣)란 단순히 신유학의 이기론(理氣論)에서 말하는 우주 구성 요소로서의 질료를 지칭하는 ‘기'가 아니고, ‘지극하고도 신령한 기운으로서 한울님을 운동적 동태 양식으로 서술한 언표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루아하(ruah)나 ‘프뉴마’(pneuma)와 같은 것이다.
‘지기'는 만물의 생성과 창발 과정에서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령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금지' (今至)는 ‘이제 여기 이르다, 이제 접하다라는 의미이다. ‘원위'(願爲)란 ‘청하여 빈다, 간구한다’ 라는 의미이다.
‘대강(大降)이란 ‘크게 강림하여 기화(氣化)를 입는 것' 이다. 종교유형론 관점에서 말한다면 ‘지기금지 원위대강 이라는 ‘주문 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이신 하나님이 기도하는 신자나 회중 가운데 강림하시기를 기도하는 것과 유사하다.(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