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크게 요약하면 이런 것 같습니다.
너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네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네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주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이 주님이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오늘 말씀을 뜯어보면 사랑의 상승이 있습니다.
나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여기애인(如己愛人)에서,
내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여주애인(如主愛人)으로.
그러므로 상승의 시작인 나 자신처럼 이웃 사랑하기를 보겠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동일시(同一視)와 불이시(不二視)입니다.
동일시란 너와 나는 같고 하나라는 시각이고,
불이시는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는 시각입니다.
우리 인간관계는 다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다름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같음과 하나를 추구할 수도 있고,
다른 존재가 같을 수는 없고 하나 될 수는 더더욱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다름 때문에 같을 수 없고 하나 될 수 없다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고,
다르지만 같음도 있고 둘이지만 둘이 아니라 실은 하나라는 걸 보는 겁니다.
이것을 쉽게 경상도 식으로 얘기하면 ‘우리가 남이가?’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다르지만 남이냐 하면 남은 아니라는 말이고,
다른 것만 보며 남이라고 하지 말고 같은 점을 보며 남이 되지 말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 다름만 보기에 남북이 적이 되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다름만 보기에 좌와 우가 극좌와 극우가 되어 싸웁니다.
이렇게 가다가 남과 북은 영원히 다른 나라가 되고,
대한민국은 둘로 쪼개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사랑은 다름 때문에 남남인 채로 살려는 것을 극복하고,
같음을 발견하려고 애쓰며 하나를 살려고 하는 의지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과는 남남인 채 사는 것이 편하고,
다른데도 같음을 보고 하나가 되려는 것은 너무 힘든 것인데
주님께서는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당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런 놀라운 표현을 하십니다.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그런데 우리의 주님께서 이렇게 이웃을 당신 형제라고 하시고,
이웃에게 한 것이 곧 당신에게 한 것이라며 이웃과 당신을 동일시하시며
당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 신명기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며 ‘나는 주님이다.’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라고 하신 분이 우리의 주인님인 것 맞습니까?
주인님이 이리 말씀하셨는데도 나는 남남인 채로 편히 살겠다고,
남남인 채로 편하게 사는 것에 안주하며 살겠다고 하시겠습니까?
앞에서 사랑은 의지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려는 의지이고 더 고귀한 사랑을 향한 상승 의지입니다.
고귀한 사랑이란 주님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남이 아니라 주님으로 사랑하는 것인데
이 고귀한 사랑을 향한 상승 의지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