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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2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Ma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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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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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루카 15,17-20)

아버지 집으로 돌아감
야곱이 양떼를 이끌어
아버지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분별 있는 이들을 위한 상징,
지각 있는 이들을 위한 비유가
이 귀향에 들어있는 바,
우리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시다.
형제들이여, 덧없는 이 세상을 향한
욕망의 포로가 되지 맙시다.
그대의 본향은 에덴이니
거기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복 있는 자입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낙원찬가-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7
지성을 버리고 순수한 무지를 경험하라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루카 2,42).
이와 관변하여 한 이교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늘보다 빠른 것이 자연에는 없다. 하늘은 자신의 궤도 안에 있는 만물을 추월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신도 자신의 궤도 안에서 하늘보다 더 멀리 날아갑니다. 정신이 제 힘으로 움직이고, 낮고 저열한 것들로 인해 타락하거나 훼손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정신은 가장 높은 하늘까지도 추월하며, 가장 높은 정상에 이르러, 모든 선 가운데 최고의 선에 의해 양육되기까지 쉬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잠재력을 깨닫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고,여러분 자신을 이 어둠과 무지에다 전적으로 맡기고, 이 어둠과 무지를 탐색하고 그것들로부터 돌아서지 않는다면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전부이신 하느님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 잠재력 속에 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이 자기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모르면 모를수록, 여러분은 그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입니다. 이 광야에 대하여 호세아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제 나는 그를 꾀어 내어 빈 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 추리라’(호세 2,16). 참되고 영원한 말씀은 독거(獨居) 속에서만 들려집니다. 사람들이 자신과 모든 잡다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광야와 같이 되는 자리, 그곳이 바로 독거입니다. 예언자는 이 광야와 같은 독거를 갈구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둘기처럼 날개라도 있다면 안식처를 찾아 날아가련얀’μl면 55,히. 우리는 어디서 안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모든 피조물로부터 벗어난 자리, 곧 쓸쓸한 광야에서만 안식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 집 뜰안이면 천날보다 더 나은 하루, 악인의 편한 집에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 집 문간을 택하리이다”(시편 84,10)(355)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3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23-26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하느님 신앙과 동학의 시천주
‘조화정'의 ‘정'(定)이란 ‘그 덕에 합하여 그 마음을 정하는 것' 이라는 말인데, ‘조화’의 상태에 머물고 기하는 것이다. ‘영세불망’은 ‘인간이 일생 동안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솔한 신앙이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것이 아니다. 폴 틸리히의 말을 빌리면 종교란 ‘궁극적 관심'
이어야 한다. 언제나 항상 한울님을 모시고 한울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이제 ‘민사지' 한다. 세상사와 만물에 형통한다.
동학의 ‘강령 주문 21자’ 해설은 이쯤 해두고, 동학(천도교)의 한울님 신앙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동학의 시천주 신앙은 한민족의 오랜 히느님 신앙이 위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땅 위로 분출해 나온 것이다. 동학이 발생할 당시 외세의 침략과 수탈, 통치 세력의 부패와 가렴주구로 인하여 민족의 기강은 무너지고 가난과 질병과 불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 밝음 대신에 어둠의 세력이, 광명정대함 대신에 불의한 집단의 당파성이, 높고 숭고함 대신에 천박한 동물적 현세주의가 판을 치면서 모든 생명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러한 반생명적 현상을 일시에 돌파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혁명과 힘이 요청되었다. 동학의 한울님 신앙의 복권으로 인하여 한민족 민중의 가슴속에서 5천 년 동안 면면이 흐르던 인격적 하느님 신앙과 ‘한 밝음의 신앙’이 다시 회생한 것이다. 동학(천도교)의 신관은 동양 일반의 내재적 범신론 도 아니고, 셈족계 종교의 ‘초월적 유신론’도 아니며, 그 긴장 갈등이 통전된 유일신론적 ‘범재신관(pan en-theism)인 것이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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