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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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3일 사순 제3주일 강론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을 사순 제3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우리 각자에게 또한 말씀하십니다. 이 회개가 어떤 것인지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 체험은 회개의 참 본질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신앙여정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회개체험을 말합니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죄중에 있었을 때의 태도와 회개한 이후에 태도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성 프란치스코의 체험은 우리의 회개생활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바뀌는 전 존재적 회개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생각과 말과 행동의 총제적 변화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의 근원적 출발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나 그분의 은총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의 체험처럼 그분이 나를 회개 시키는 수동적 회개안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혼신의 노력이 들어간 역동적 회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완성은 사도 바오로의 회개체험 처럼 내가 사는 체험이 아니라 내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하는 체험입니다. 내안에 미움이 살게 하지 않고 사랑이 살게하고, 내안에 분노가 살게 하지 말고 용서를 살게하며, 내안에 교만이 살게 하지 말고 겸손이 살게하고, 내안에 불신이 자리잡게 하지 말고 믿음으로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참된 사랑의 단맛을 알게 되면 단맛으로 여겼던 쾌락이 쓴맛으로 변하고, 미움과 분노와 시기 그리고 교만의 쓴 맛이 그분의 사랑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화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이 말은 사랑하지 않으면 미움으로 멸망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교만으로 멸망하고 믿지 않으면 불신으로 멸망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분노로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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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 읽기> 마태 27-28장 / 사도 1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조롱하도록 놓아 두시지 않는다
공복재에 대한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따뜻한 것을 마시게 했
다. 그리고 성당은 학교가는 길에 있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영성체에 참가했고 그 밖의 다른 아이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선생은 첫 수업시간에 일견하여 영성체에 참가한 아이들을 찾아내었다. 이 시간에 누군가가 매우 교묘히 그녀에게 영성체에 참가한 아이들의 이름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번도 그럴 가능성은 생각 못하였다. 본당공동체 아이들이 확고하게 단합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었기 때문이다.
4 학년 A반에 열 살 난 안젤라(Angela) 가 있었다(이 아이의 이름과 여선생의 이름은 가명임). 그녀는 매우 영리했고 재능이 있었으며 항상 일등만 했다. 그녀의 동급생들은 그녀를 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고 항상 동급생들의 마음에 들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안젤라가 매일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해왔다. “너에게 어떤 질책이 내려질지 알고 있니?"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장난이나 하는 것처럼 짓궂게 웃었다. “신부님, 선생님도 나를 그렇게 쉽게는 질책하지 못할 거예요. 저는 이것을 신부님께 보증할 수 있어요. 더 열심히 공부할께요. 제발 안된다고는 말하지 마세요. 영성체한 날에는 제가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된다고 말해 주세요. 제가 놓은 표본이 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요." 나는 비록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