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늘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에 두 가지 의미
곧 사랑과 정의 두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지만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정의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는 사랑이지만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죄를 들추는 정의입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우선 정의의 차원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왜냐면 오늘 이 말씀은 주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비추는 기능과 들추는 기능 두 가지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죄와 악으로 늘 어두운데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자기가 그 어두움의 근원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이럴 때 빛은 모든 것을 밝히고 죄악을 들춰냄으로써
세상의 죄악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지만
죄를 저지르는 악한 사람들에게는 쇠망치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주님을 세상의 빛으로 모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바리사이들은 세상의 빛이라고 믿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라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빛을 빛이 아니라고 믿으면 그에게는 빛이 사라지고
오늘 주님 말씀처럼 그는 어둠 속을 걷고 생명의 빛을 잃겠지요?
그런데 주님을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어둠 속을 걷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만, 아직 죄 중에 있기에 그 죄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뒤 숨었듯이, 어둠 속으로 숨는 겁니다.
우리도 처음엔 주님에게서 빛을 발견하고 빛이신 주님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아직도 자기에게 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빛을 보지 않고 빛 때문에 드러난 자기 죄를 보게 되고,
죄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모든 빛을 피해 자기 안으로 숨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자폐증 환자처럼 하느님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도 피해 숨게 됩니다.
혼자 있는 것이 좋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숫제 마음 편한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깨달아야 하고 떨치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늘 죄와 은총을 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러므로 늘 죄에 대해 겸손하며 빛의 은총을 청하며 주님을 따라나서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는 겸손하며 하느님 은총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며
주님을 따라나서는 오늘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