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향해 길을 내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너희에게 자유를 주리라.” (요한 8, 32)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향한 여정은 가난과 겸손이며 가난과 겸손은 내려가고 내려놓는 선으로써 허용하고 놓아주는 자유를 통해 자유를 얻는 영적인 기술입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법”으로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얻고, 자유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 신비는 성프란치스코를 통해 나에게 전해졌습니다.
사실과 실제적 경험으로 나는 이 신비를 향해 돛을 펼쳤습니다. 놓아버리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으려고 하다가 나에게서 내가 해방되는 길을 찾은 것입니다. 놓아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부인하거나 억누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무엇을 놓아버리는 것은 그것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까지 나의 삶을 허용하셨고 나는 그 허용하시는 하느님으로부터 허용을 배웠으며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배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고한 지식”(필립 3,8)으로써 나는 나의 자유를 그분께 내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하느님을 향해 길을 내는 꼭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허용은 나에게서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그것은 부인되고 거절당했으나 그럼에도 진실한 내면을 그대로 보면서 그것들을 자신에게나 남들에게 돌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부인하거나 탓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 아니었으면 나는 길을 잃고 방황했을 것입니다.
복음에 비추어보면 놓아버리기는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불완전함을 복음적 불안정으로, 즉 나를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다른 사람에게 내어놓는 마음입니다. 나의 불완전함을 하느님께 넘겨드림으로써 하느님께 내어드린 나의 자유가 그분의 손에 의해 행사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삶의 방식입니다. 용서는 용서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허용으로 내가 잘못된 길을 갔어도 하느님의 허용안에서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허용하시는 데 내가 허용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분을 따르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떠한 해명도 하느님 앞에서는 부질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그림자를 보면서 우월감도 열등감에도 그것과 일치시키지 않았습니다. 우월감도 열등감도 둘 다 똑같이 진실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습니다. 용서는 받은 사람이 그것을 건네 줄 수 있습니다. 나는 도구적 존재로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기울입니다. 나는 수도관처럼 하느님의 선을 흐르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일은 그것을 멈추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놓아버리는 기술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자유의 비결입니다.
프란치스칸 가난과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관계의 혁명이었습니다. 우리와 동등해지기 위해서 하느님의 동등성을 포기하신 예수님은 나의 거울로써 나를 비추십니다. 내려가고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데 사용한 나의 자유는 그렇게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로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은 그렇게 너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나의 자유를 제한합니다.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유는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나의 자유를 내어놓는 개인적인 해방 안에서 구체화 됩니다. 거의 모든 역사 안에서 보면 죽어야 하는 것은 항상 다른 누구이고 이교도, 죄인, 인과응보의 틀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자신인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갈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죽어야 할 것들이 우리의 이기심과 이기심이 만든 탐욕과 수많은 욕망, 지능, 육신, 의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자아를 찾으려면 우리의 자아를 잃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로 죽어야 하는 것은 우리 마음과 에고(자아)와 자신만을 찾는 문화가 만든 우리의 거짓 자아입니다. 진짜 나를 찾는 길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겉으로 꾸며진 가짜 정체, 일시적 유행, 인과응보적인 심리적 구조들입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가 객관적이고 참된 자아입니다. 많은 이들이 잘못된 자기 정체성 안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진실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골로 3,3) 참 자아를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야말로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 자유를 누리는 이들의 얼굴은 언제나 기쁨에 차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증명해 주는 확실한 표징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너희에게 자유를 주리라.” (요한 8,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