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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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요한 20,11-12)
두 계약
천사가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은, 사도들이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고 선포할 때를 가리킵니다. 그들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고 말할 때 천사는 그분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이 천사들이 두 계약을 나타낸다고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한 천사는 처음의 계약을, 다른 천사는 뒤의 계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천사들이 주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에 함께 있은 것은 두 계약이 다 주님께서 사람이 되셨다가 돌아가셨으며 다시 살아나셨음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옛 계약은 그분의 머리에 앉아 있고 새 계약은 그분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대 그레고리 우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8
지성을 버리면 지식의 변모가 일어난다
유대인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
여기서 또 다른 물음이 제기됩니다. 영혼의 모든 기능이 저마다 나름대로 작동하면서 다른 기능을 방해하지 않고 하느님의 활동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만물을 아십니다. 그리고 성인들도 그러합니다. 이처럼 전혀 방해 작용을 하지 않는 자연적인 지식이 내 안에 있을 수는 없나요? 아래의 설명을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인들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형상만을 보고, 이 형상 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실로 하느님은 자신을 들여다보시고, 만물 속에서 자신을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는 것처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거울, 곧 일순간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한 형상 속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거울을 늘 지니고 있다면,활동이나 지식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사물로부터 다른 사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사물로부터 눈길을 돌릴 때 다른 사물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영혼이 자신의 기능들에 단단히 묶여 있어서 그 기능들이 움직이는 곳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374)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11-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거룩한 성심에 대한 묵상, 요셉 맥도넬 신부
성심에 대한 묵상
첫 번째 시리즈
첫 금요일 신심
III. 창과 예수님의 상처받은 마음
세 번째 요점: 권력의 도구인 창
성찰:
우리도 고대 로마 병사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마음의 생명 주는 샘을 열 수 있는 창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쥐고 있는 창은 철이나 강철이 아닙니다. 영적 쌍날 창으로, 예수의 마음의 숨겨진 보물을 열기 위해 날카롭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확신과 깊은 겸손의 영적 창입니다:
무한한 확신과 신뢰는 우리 구세주의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과 공로에 대한 것입니다;
깊은 겸손과 절대적인 자기 불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신성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일종의 폭력을 가하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 영혼에 그의 사랑의 보물을 쏟아붓게 강요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았던 자가 실망한 적이 없음을 알라" (집회서 2,11).
겸손함으로 우리는 "그를 높이고, 배고픈 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운 그분"의 자비로운 시선을 자신에게 끌어오게 됩니다(루카 1,52-53).
적용:
하느님이 주시는 무한한 사랑에 대한 확신, 겸손, 그리고 자기 불신은
예수의 상처 입은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할 덕목들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그의 봉사에서 큰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과 은총을 찾습니다.
애정과 결심:
"오 주님, 나는 모든 희망을 주님께 두고,
모든 고난과 괴로움 중에 주님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이 아닌 외부에서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병약하고 불안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