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증 편향적인 사람은 나이 먹을수록 그렇게 굳어지는데
이것이 오늘 사도행전의 지도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완고함이고,
오늘 주님께서 꾸짖으시는 제자들의 불신도 이것의 일종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편향적으로 편드는 것인지 모르지만
제자들의 불신은 이해할 수 있는 불신이고,
그래서 주님께 그렇게 꾸짖음 받을 정도인가 생각도 됩니다.
왜냐면 그들이 믿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이 헛소리려니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은 제자들 뿐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이 믿지 못한 것이 사람의 말이기 때문만일까요?
그렇지 않고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이기 때문이고,
이런 말은 하느님께서 말씀해주셔도 믿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은 사람의 말이기에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우리가 신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세계에 대한 말은 신이라야 알아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성령을 받고 나서야 믿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 몸무게에 헤비급과 라이트급이 있듯이 믿음에도 급(Class)이 있는 것입니다.
곧 신적인 Class(급)와 인간적인 Class(급)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의 큰 믿음은 믿을 수 없는 인간도 믿지만
인간의 작은 믿음은 믿어야 할 하느님도 믿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은 당신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막중한 사명을 맡기시는 주님에 관해 얘기합니다.
우리의 작은 믿음은 아무나 믿지 못하고 여간해서는 믿지 않지요.
그런데도 혹간 가다가 크게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믿어주면 믿어주는 대로 되는 경우가 있지요.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면 처음에는 그 믿음에 배신해도
언젠가는 그 믿음에 보답하잖습니까?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세 번 배반하였고 그런데도 또 믿어주시니 결국 주님을 위해 죽지요.
이것이 주님의 큰 믿음인데
그런데 베드로가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큰 믿음으로 믿어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 모셨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오늘 사도행전은 주님께서 믿어주신 베드로가
그 믿음에 배신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주님을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담대하고 늠름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큰 믿음을 닮는 우리,
그래서 베드로처럼 믿음에 믿음으로 보답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