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어느 여인이 예수님께 당신의 어머니가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가 더 행복하다고 답하십니다.
그렇지만 이 대답이 여인의 말을 정면 부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 마리아가 행복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행복하다는 여인의 이유와 예수님의 이유가 같을까요?
분명코 다를 것입니다.
적어도 여인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했기에
행복하다고 얘기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뜻이었다면 예수께서 하느님의 말씀 운운하지 않으셨겠지요.
여인은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의 행복을 얘기할 뿐입니다.
여인은 틀림없이 예수님께 홀딱 반한 여인이었습니다.
적어도 어제 예수님을 베엘제벨의 하수인이라고 했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아들로 둔 마리아에 대한
그 부러운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토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훌륭한 가르침은 그에게 너무도 감미로웠고,
영육 간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예수님의 그 사랑은
그의 존재를 완전히 흔들어놓았습니다.
어쩌면 자기도 그런 아들을 두고 싶어서 무척이나 애쓴 여인인지 모릅니다.
유대인 엄마는 우리 한국 엄마들 이상으로 자녀 교육열이 대단하다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여인은 자녀로 행복하고자 하는 여인입니다.
나를 다 바쳐 자녀가 잘되는 것이 행복인 엄마입니다.
그래서 자녀로 행복하기도 하고, 자녀로 엄청 고통을 당하는 엄마입니다.
이런 엄마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사실은
예수의 엄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여인에게도 마리아처럼 당신의 어머니가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도전도 하시고 초대도 하십니다.
아들로서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으로 행복할 것인가?
아들의 엄마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