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유다와 시몬 사도의 축일인 오늘 복음은 12 사도가 뽑히는 내용입니다.
옛날에는 왜 12 사도였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지 않다가
근자에 12사도가 이스라엘 12지파의 수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직한 후원회 봉사자 “징검다리”도 12분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12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공동체의 숫자입니다.
12에서 하나만 빠져도 이스라엘은 완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것이고,
반대로 하나도 빠지지 않고 12지파가 모두 참여하면 완전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12 사도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시려고
주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아무리 수석사도이고 그래서 제일 중요하다고 해도
베드로 사도만 가지고 사도단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비교적 덜 알려진 유다와 시몬 사도가 빠지면
사도단은 불완전한 사도단인 것입니다.
사실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과 마찬가지로
열혈당원 시몬이 사도단에 들어온다는 것은
사도단이 위태로워지고 일치를 깰 수도 있는 위험한 구성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도단은 완전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도단이 아니라
이렇게 공동체를 해치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도 빠지지 않는 사도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서 얘기하는 “전체가 잘 결합된 건물”은
구성원들이 아무도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한 공동체입니다.
능력이 있다거나 더 큰 책임을 맡았다고 더 필요로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필요치 않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고
역할이 크던 작던 모두가 소중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그런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완전한 사도단, 완전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공동체가 아니라면 이것만으로도 완전한 공동체라 할 수 있겠지만
주님의 공동체라면 하느님이 빠진 공동체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에서 이런 표현을 쓰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이라는 표현과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라는 표현 말입니다.
일반 세속 집단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려면
구성원들이 인간적으로 끈끈하게 잘 결합된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주님을 중심으로 결합된 공동체여야 합니다.
요즘 우리 공동체들을 보면 수도공동체들까지도
그저 인간적으로 조화로운 공동체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 안에서 신앙으로 결합된 공동체라기보다
구성원 간의 대화, 소통, 친교 같은 것이 더 중시되는 공동체라고나 할까요.
다르게 얘기하면 기도 안에서 깊이 형제를 이해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서로 잘 이해하고 만나는 게 더 중시되는 공동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우리의 공동체는 수평적으로 잘 결합된 공동체일 뿐 아니라
수직적으로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저의 수련소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이런 면에서 정말 바람직하고 부끄럽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여러분들도
나의 수도 공동체 또는 나의 가정 공동체가
주님 안의 거룩한 공동체인지 돌아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