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는 허물어져 가는 성당에서 주님으로부터 '가서 나의 집을 고치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프란치스코는 곧장 아버지 가게에서 옷감을 꺼내 폴리뇨에서 그 옷감과 말을 판다. 그리고 그 돈을 성 다미아노 성당 사제에게 건넨다. 이 사건을 첼라노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리스도의 새 군사가 성당에 올라가니, 너무도 초라한 성당의 모습에 딱한 생각이 들어,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한 가난한 사제를 보자 큰 믿음으로 그이 성스러운 손에 입을 맞추고 가지고 있던 돈을 주며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사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갑작스런 회개를 의아스럽게 여기며 들은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끈질기게 고집하여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한 신뢰를 얻으려고, 주님을 위해 자기가 함께 머물 허락을 해 줄 것을 사제에게 간곡히 또 거의 빌다시피 청했다. 마침내 그 사제는 젊은 사람이 그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지만, 이 젊은이의 부모가 두려워 돈은 받지 않았다. 그러자 돈을 진실로 경멸하는 프란치스코는 돈을 창턱에다 냅다 집어 던졌다(1첼라노 9).
Maurice Carmody는 이 사건을 프란치스코 여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첼라노가 이 사건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라틴용어들은 프란치스코가 이 순간부터 교회의 보호 아래, 구체적으로 아시시 주교 보호 아래, 합법적으로 들어감을 나타낸다. '주님을 위해 그 성직자와 함께 머물 것'을 요청하고, 그 성직자가 동의함으로,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사람(Oblate, 헌납자)가 된다. 헌납자는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바친 평신도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들은 재산을 수도원이나 교회에 헌납하고 헌납자의 옷을 입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과 나병환자들을 위해 여러 일들을 했다.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사람이 됨으로, 아시시 시당국의 사법권에서 제외된다.
아버지 베르나르도네가 시당국에 프란치스코를 고발했을 때, 시당국은 그를 재판할 수 없어 베르나르도네에게 주교를 찾도록 안내한다. 프란치스코가 이미 교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헌납자의 생활은 그의 이후 회개 삶에 영향을 끼친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와 결별한 후, 자유로운 은수자로서의 삶은 살아간다. 한편으로 프란치스코는 조용한 곳을 찾아 기도생활을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그는 나병환자들을 찾아가 섬기는 삶을 산다.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하던 이들을 계속하면서 회개의 삶의 깊이를 더하여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