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주님과 제자들은 사뭇 대조를 이룹니다.
제자들의 상태를 나타내는 오늘 복음의 표현들을 먼저 보겠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주님을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합니다.
놀랍니다.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입니다.
믿지 못하고 놀라워합니다.
무서움, 두려움, 놀람, 의혹과 의심 등,
대체로 어둡고 부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평화이시고
그들에게 하시는 행위는 천연덕스러우십니다.
우선, 주님은 그들 가운데 떡하니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인사하십니다.
다음은 의심을 품고 있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먹을 것 좀 달라고 하셔서 그것을 제자들 앞에서 잡수십니다.
그런데 평화를 빌어준다고 제자들이 평화롭겠습니까?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의 의심을 풀어주려고 손발을 보여주시고
당황하고 있는 제자들을 안심케 하려고 음식을 잡수시지만
그것이 의심을 풀어주고 제자들 마음을 단숨에 안심케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제자들의 깨달음은 더디기만 하고
주님께서 하시는 것은 천연덕스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더딘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깨달음이 느릴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어제, 그제는 저의 소신학교 동창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도원에 있는 관계로 잘 나가지 못했는데
수도원에 있다 먼저 죽은 동창을 추모하는 모임이었기에
제가 이 모임을 주관해야 했고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였습니다.
저의 소신학교 동창은 총 120명인데
20명이 신부가 되고,
그중 3명이 죽고 1명이 환속을 하여 현재 16명이 신부입니다.
짧은 강의에 이어 어제 나누기를 하였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신학교를 떠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나름대로 세상에서 성공을 하였고 신앙적으로도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의 하는 얘기는 너무도 진지했고
그들이 살아온 삶은 너무도 훌륭했습니다.
신부가 된 저희보다 훨씬 훌륭한 그들을 보며
감동도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는데
한 편, “이것을 진작 깨달았다면
아무도 신학교를 나가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승의 가르침과 깨달음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르침과 깨달음 사이에는 수없는 실패와 좌절이 필요하고,
의혹과 당혹과 두려움의 순간이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수만큼 주님은 다가오시어 평화를 빌어주시고
깨닫게 하시려고 애를 쓰셨을 테지만
그때는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평화롭지도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처지와 수준을 아시고
우리 처지와 수준에 맞춰주십니다.
손발을 보여주시고 음식을 같이 드시는 것은 이 표시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제제들이 마음을 열고 성경을 깨닫게 된 그 때가 오늘 복음의 기록처럼
예수님의 천연덕스러운 행위 바로 다음이 아닐 겁니다.
긴 시간 후에 제자들이 깨달았을 거고
그리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증인이 되는 데는
더더욱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주님은 이 긴 시간을 물고기를 구워주시고
우리와 같이 잡수시며 기다리십니다.
제자들의 상태를 나타내는 오늘 복음의 표현들을 먼저 보겠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주님을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합니다.
놀랍니다.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입니다.
믿지 못하고 놀라워합니다.
무서움, 두려움, 놀람, 의혹과 의심 등,
대체로 어둡고 부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평화이시고
그들에게 하시는 행위는 천연덕스러우십니다.
우선, 주님은 그들 가운데 떡하니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인사하십니다.
다음은 의심을 품고 있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먹을 것 좀 달라고 하셔서 그것을 제자들 앞에서 잡수십니다.
그런데 평화를 빌어준다고 제자들이 평화롭겠습니까?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의 의심을 풀어주려고 손발을 보여주시고
당황하고 있는 제자들을 안심케 하려고 음식을 잡수시지만
그것이 의심을 풀어주고 제자들 마음을 단숨에 안심케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제자들의 깨달음은 더디기만 하고
주님께서 하시는 것은 천연덕스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더딘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깨달음이 느릴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어제, 그제는 저의 소신학교 동창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도원에 있는 관계로 잘 나가지 못했는데
수도원에 있다 먼저 죽은 동창을 추모하는 모임이었기에
제가 이 모임을 주관해야 했고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였습니다.
저의 소신학교 동창은 총 120명인데
20명이 신부가 되고,
그중 3명이 죽고 1명이 환속을 하여 현재 16명이 신부입니다.
짧은 강의에 이어 어제 나누기를 하였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신학교를 떠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나름대로 세상에서 성공을 하였고 신앙적으로도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의 하는 얘기는 너무도 진지했고
그들이 살아온 삶은 너무도 훌륭했습니다.
신부가 된 저희보다 훨씬 훌륭한 그들을 보며
감동도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는데
한 편, “이것을 진작 깨달았다면
아무도 신학교를 나가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승의 가르침과 깨달음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르침과 깨달음 사이에는 수없는 실패와 좌절이 필요하고,
의혹과 당혹과 두려움의 순간이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수만큼 주님은 다가오시어 평화를 빌어주시고
깨닫게 하시려고 애를 쓰셨을 테지만
그때는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평화롭지도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처지와 수준을 아시고
우리 처지와 수준에 맞춰주십니다.
손발을 보여주시고 음식을 같이 드시는 것은 이 표시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제제들이 마음을 열고 성경을 깨닫게 된 그 때가 오늘 복음의 기록처럼
예수님의 천연덕스러운 행위 바로 다음이 아닐 겁니다.
긴 시간 후에 제자들이 깨달았을 거고
그리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증인이 되는 데는
더더욱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주님은 이 긴 시간을 물고기를 구워주시고
우리와 같이 잡수시며 기다리십니다.
짙은 색소가 없으시며,순수 투명 자체이신 벽옥의 정금 같은 생명의 말씀..
감사드립니다.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