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자도 헌금을 하고 가난한 과부도 헌금을 합니다.
부자는 가지고 있는 것의 얼마를 헌금하고
과부는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를 헌금하였습니다.
주님은 과부를 칭찬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부자를 비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상대적으로 정성이 부족하다는 뜻은 담고 있지만
비난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것이 더 쉬울까.
만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 원을 다 헌금하는 것과
가지고 있는 천억 원을 다 헌금하는 것과 어떤 것이 더 쉬울까.
반대로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만 원이 가진 것의 전부인 사람이 더 쉬울 것입니다.
가진 것 천억 원을 다 헌금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만 원을 가진 사람은 어차피 도 아니면 모입니다.
전혀 안 내던지 낼 바에는 다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천억 원을 가진 사람은 일부인 백억 원을 내어도
많이 내는 것이기에 일부만 내어도 됩니다.
또 만 원을 가진 사람은 그 만 원이란 것이 있으나 없으나
사실 별 차이가 없기에 다 주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천억 원을 가졌던 사람이 다 주고 한 푼 없이 되는 것은
그 전과 후가 천지차이가 되기에 다 주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가진 것을 다 헌금한 과부의 행위가 별 거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무엇을 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전부를 걸고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이 없다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하기만 한다면 능력이 없기에 온 힘을 다 해서 할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선물을 하려고 할 때
돈이 없다고 선물 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지만
선물을 한다면 가진 것 톡 털어서 선물을 할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능력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와 가까이서 일과 삶을 동반하는 한 형제는
저보다 능력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로 힘을 안 들이고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데
그 형제는 별 거 아닌 일 하나를 가지고 끙끙 댑니다.
답답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온 힘을 다해 그 형제가 하는 것임을 알기에
어떤 때는 부럽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형제를 보며 저는 정성이 부족한 저 자신에 대해
늘 일종의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의 특전입니다.
하기만 한다면 온 힘을 다 해 하고
주기만 한다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동원하는 것,
이것이 정성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 행위에 존재가 다 걸려 있으니
온 정성을 다 할 수밖에 없고
그 정성은 보통 정성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님께 칭찬 받는 이유이고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