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이제 드디어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의 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이들의 파견을 앞두고 안티오키아 교회는 단식기도를 합니다.
상상만 해도 참으로 엄숙하고 아름답습니다.
공동체가 같이 단식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되 단식을 하며 기도를 합니다.
여기에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결정에 모범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대사를 앞두고 어떻게 합니까?
개인적인 중대사일 경우에는 궁리를 많이 하지요?
공동체의 중대사일 경우에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합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하지만
이것은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거고 누구나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중대사를 앞두고 신앙인과 비 신앙인을 가르는 것은
기도를 하느냐, 아니면 궁리나 회의를 하느냐입니다.
세례를 받고 매주, 아니 매일 미사에 참석하더라도
기도로 중대사를 결정하지 않으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더라도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미 자기가 다 결정해놓고 자기 하려는 것을
하느님께서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올바른 기도 아닙니다.
올바른 기도는 요구가 아니라 들음입니다.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여쭙는 겁니다.
기도에서 단식이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단식이란 그저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라
오늘 사도행전처럼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나의 머리작용, 성취 욕구, 고뇌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단식기도란 성령께서 말씀하시게 하는 기도입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이제 드디어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의 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이들의 파견을 앞두고 안티오키아 교회는 단식기도를 합니다.
상상만 해도 참으로 엄숙하고 아름답습니다.
공동체가 같이 단식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되 단식을 하며 기도를 합니다.
여기에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결정에 모범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대사를 앞두고 어떻게 합니까?
개인적인 중대사일 경우에는 궁리를 많이 하지요?
공동체의 중대사일 경우에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합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하지만
이것은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거고 누구나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중대사를 앞두고 신앙인과 비 신앙인을 가르는 것은
기도를 하느냐, 아니면 궁리나 회의를 하느냐입니다.
세례를 받고 매주, 아니 매일 미사에 참석하더라도
기도로 중대사를 결정하지 않으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더라도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미 자기가 다 결정해놓고 자기 하려는 것을
하느님께서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올바른 기도 아닙니다.
올바른 기도는 요구가 아니라 들음입니다.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여쭙는 겁니다.
기도에서 단식이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단식이란 그저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라
오늘 사도행전처럼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나의 머리작용, 성취 욕구, 고뇌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단식기도란 성령께서 말씀하시게 하는 기도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여쭙겠습니다.
어떻게 제가 최선을 다해
당신을 섬기며...
이 지상에서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오리까?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합니까?
말을 많이 하기보다 침묵하는 법을 배우기 하시고,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기울이게 하소서.